귀 없는 창업자들

스타트업-바이블

위 이미지는 스트롱벤처스 대표의 블로그에서 본 글(링크)이다.

작은 기업이 J커브를 그리며 성장하는 이유, 망하는 이유는 모두 대표에게 있다. 성공의 이유가 명확하듯 실패의 이유도 명확하다. 운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 자신이 추진하는 비즈니스의 본질을 모른다. (돈만 벌면 돼)
  • 기술 기반이지만 기술에 관심이 없다. (알아서 해줘)
  • 몇 안 되는 사람으로 굴러가지만 사람을 천시한다. (돈주고 시키는 건 당연한 일이지)
  • 자신의 비즈니스를 굴러가게 하는 본질을 공부하려고도, 이해하려고도, 들으려고도,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거 간단한 거잖아)
  • 자기 생각에 100% 확신이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내가 신이다)
  • 남의 생각, 특히 자신보다 아래로 여기는 이들을 존중할 줄 모른다. (네가 뭘 알아?)
  • 자신이 가진 게 무엇인지, 없는 건 무엇인지, 가진 걸로 할 수 있는 한계선은 무엇이며, 당장 할 수 없는 건 무엇인지 모른다. (망치 하나로 산을 깎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곧바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단계별로 쌓아가는 시간의 힘을 무시한다. (출시하면 바로 매출 나와야지, 뭘 기다려?)
  • 사람과 돈 모두 도구로만 보인다. (저들을 이용하면 순식간이지 않겠어?)
  •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 협력 관계에 있는 업체 등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질 줄 모른다. (줬으니 당연히 받아야지)

그런 모든 사고가 자신을 폐업과 폐망의 길로 인도한다. 주변 사람은 알지만 자신은 모른다. 확신이 가는 비즈니스이고, 생각대로 굴러가기만 했다면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는 비즈니스인데 왜 망했지? 그러나 그 생각조차 찰나의 시간 후에 바뀐다. 내가 맞았는데 운이 나빴다라든가 대외조건이 너무 안좋았다라든가 하는. 바보가 자신이 바보인 줄 알면 바보이겠는가. 자신을 몰라서 바보인 것이고, 결국 망하는 창업가는 자신의 기준과 생각대로 하면 성공한다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망한다.

그런 이들이 빨리 가려고만 생각하지 함께 멀리간다고 생각할까? 나도 망하는 여럿 기업의 대표를 봐왔지만 대개 이런 이유들로 망한다. 하지만 본인만 모른다. 본인은 기이한 착각과 망상에 빠져 있다. 단지 시간이 없어서, 인력과 자원이 부족해서 생각대로 구현이 안 되었고, 그래서 이런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고 훗날 말하지만, 그런 이들을 옆에서 봐왔던 사람들은 안다. 이미 망할 조짐은 초기부터 수없이 보여왔다고. 스스로 변하지 않는 한 좋은 기업은 절대 태어나지 않고 성장하지 않는다.

주는 것 없이 바라기

패배는 ‘적당히’ 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적당히 만들고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쉬면서 적당히 배우는 사람. 모든 것을 적당한 수준에서 끝내고, 주는 것 없이 바라며 노력 없이 성과를 바라는 이중잣대가 있는 사람. 일을 내 것으로 만들지 않고 모르는 분야를 알려고 하는 열의가 없고, 잘 해내고자 하는 열망이 적은, 귀찮음은 타인에게 전가하는 이에게 패배는 디폴트값이다. 노력한 만큼, 일을 내 것으로 장악한 만큼, 귀찮은 것까지 떠안은 만큼, 성공에 목마른 이리떼만큼 사냥에 굶주려 있고, 배우고 익히는 데 나이가 없다고 믿고 배우는 만큼 성공의 문은 조금씩 열리는 법. 인간관계마저 주는 것 없이 바라는 것 또한 날강도라 칭할 텐데 성공과 부의 성취는 오죽할까? 하지만 대부분은 시킬 줄은 알되 스스로 할 줄은 모른다. 그러니 패배는 따놓은 당상일 수밖에.

뇌를 재구성해서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기

뇌는 항상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을 한다.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게 좋을지를 판단하는 기계처럼. 갑작스레 단 것이 먹고 싶다든지 자극적인 영상을 보거나 숏폼을 한없이 보게 만드는 것과 같은 모든 충동은 단순한 쾌락의 추구가 아니라 도파민을 끊임없이 원하는 뇌의 갈망(Craving)이 원인이다. 한 번 도파민의 급증 상태(Dopamine Spike)를 맛본 뇌는 끊임없이 그러한 상태를 원하게 되고 이런 상태는 대체로 1분간 높은 가소성 상태로 만든다. 그때 도파민이 급증하는 갖가지 행동을 반복하면, 보상과 강화가 계속되어 시간이 갈수록 욕구는 강해지고 다시 중독되듯 도파민이 마구 분비될 만한 행동을 찾는 걸신(?) 같은 상태가 되곤 하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뇌가 강렬한 도파민의 자극을 원할 때 딱 1분만 다른 행동을 해보자. 지금 내가 이런 걸 강하게 갈망하고 있다는 상태는 인지하되 그 갈망에서 잠시 물러나 다른 일로 대체해보는 것이다. 단 1분간의 다른 행동으로 인해 뇌는 새로운 연결망들을 만들고 기존의 고자극 도파민 스파이크를 대체한다.

그때 중요한 건 다른 행동을 하며 1분을 참아낸 자신에게 적절한 보상을 선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1) 도파민 자극을 원한다는 상태를 인정하기2) 다른 행동하기 에 이어 3) 그 행동을 한 자신에게 보상하기 라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기 시작하면, 악습관과 숏폼, 고자극에 절어 있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번쯤 시간을 숏폼과 릴스에 빠져 헛되이 보내고 더 높은 자극이 아니면 만족이 되지 않는 자기 자신에게 한심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단지 다른 행동을 하고 보상하는 몇 번의 과정들이 많은 걸 바꿀 수 있다.

이 글은 <레딧의 글> 이 인상깊어 재정리하는 용도로 적어두기 위해 썼다.

관련 논문들

  • Yagishita, S. et al. (2014). A critical time window for dopamine actions on the structural plasticity of dendritic spines. Science, 345(6204), 1616–1620. 
  • Reynolds, J. N. J., Hyland, B. I., & Wickens, J. R. (2001). A cellular mechanism of reward-related learning. Nature, 413, 67–70. 
  • Gerstner, W., Lehmann, M., Liakoni, V., Corneil, D., & Brea, J. (2018). Eligibility traces and plasticity. Neuron, 97(2), 273–289. 
  • Lisman, J., Grace, A. A., & Duzel, E. (2011). A neoHebbian framework for episodic memory; role of dopamine-dependent late LTP. Neuron, 72(5), 703–717. 
  • Sutton, R. S., & Barto, A. G. (2018). Reinforcement Learning: An Introduction (2nd ed.). MIT Press.

어떤 인생도 낭비란 없다

“어떤 인생에도 낭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실업자가 10년 동안 무엇 하나 하는 일 없이 낚시로 소일했다고 치자. 그 10년이 낭비였는지 아닌지, 그것은 10년 후에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낚시를 하면서 반드시 무엇인가 느낀 것이 있을 것이다. 실업자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견뎌 나가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내면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헛되게 세월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무엇인가는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헛되게 세월을 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 훗날 소중한 체험으로 그것을 살려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 이병철, 삼성 창업주

삶은 벌어진 일, 눈앞의 현실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얼핏 아무것도 아니게 보이는 거지만 이게 시작이고 전부다. 그래서 순간을 보면 실패로 보이는 사람도 역사를 보면 달리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것은 기억해도 무엇을 봤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것은 기억해도 무엇을 봤는지는 기억하지 못해요.”

우연히 보게 되었던 유튜브에서 Megan Tan이 한 말. 영화 제작자이자 크리에이터로서 사물(Things)이 아닌 느낌(Feel)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 방법들을 활용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교토(Kyoto)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본은 갈 수 없지만 다다미 문은 만들 수 있다, 조명을 조절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소품을 활용할 수 있다와 같은 얘기들을 하며 위의 말을 했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 확실히 나는 무얼 봤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고 영상의 분위기와 느낌만 잔상에 남아 있다. 그가 옳았다.

‘중요하지 않은 걸 잘 하는 것’ 보다 ‘중요한 걸 그럭저럭이라도 하는 것’ 이 더 필요하다. 아무거나 잘 해내는 것보다는 정말 필요로 하고 중요한 일을 그럭저럭이라도 하는 것. 말처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세스 고딘은 관심과 신뢰를 얻으세요 라고 했다. 어떤 비즈니스를 하느냐에 따라 중요한 것은 다르다라고. 영상 제작 또한 ‘사람들이 무엇을 보게 될지’에만 신경쓰면 정작 중요한 어떤 ‘느낌을 주려 하는지’는 뒷전이 된다. 주객이 전도되는 건 마냥 쉬운 일이다.

오래전 방송 실험을 본 적 있다. 한 카페에서 요란한 옷을 입고 한참이나 실험 대상자 옆에 있었던 사람. 한참 후에 대상자에게 옆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입은 옷이나 색깔 등이 기억나느냐고 물었고, 대부분의 사람이 기억하지 못했다. 결론은 ‘당신 생각보다 사람들은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였는데, 사실은 그런 명명백백한 사실보다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쏟지 않을 판단력 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했다. 쓸데 없는 일에 들이는 에너지를 줄여서 보다 중요한 일에 매진하는 것. 그건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일보다 인생 전체를 잘 살아가는 근본적 힘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는 시간이었다.

이유를 대려면 백 가지도 댈 수 있어, 핑계대지마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어때? 우리가 살면서 뭔가에 이유를 대잖아. 이유/핑계를 100가지도 댈 수가 있어. 그게 루저 마인드야. 자꾸 핑계대고, 자꾸 이유대고… 이런 약한 모습 안 보고 싶다는 거야. 이해했어? 너 자신을 크게 생각해. 할 수 있다니까, 충분히? 타협하지마 타협. 자꾸 익슈큐즈를 하지 말라고. 익슈큐즈가 아니고 솔루션을 해. 솔루션을. 네 자체 내에서. ‘이렇게 했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아쉽다’ ‘이렇게 해서 다음에는 제대로 해봐야겠다’ 이런 거 있잖아. 익스큐즈가 아니라 솔루션으로 바꾸라고. 생각하는 마인드 자체를. 알겠지? 그래야 큰 선수 돼. 여기서만 이렇게 있을 거야? 그래, 더 큰 데 가야지. 그럼 더 큰 생각을 해야 한다니까. 편하게 못 가요. 누구든 편하게 못 가. 여기 있는 사람들 편하게 왔는 줄 알아? 아니야. 다 어렵게 했어. 너도 어려웠겠지만 더 어렵게 간 사람들 많아. 잘 할 수 있다니까. 잘해봐.”

-<신임감독 김연경> 5회 김연경이 인쿠시에게.

메모를 들춰보던 중에 끼적대며 적어놓았던 예능의 대사가 보였다. 그걸 어떤 형태로든 자꾸 다시 보고 스스로를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서 적는다.

돌아보면 나도 늘 이유(핑계)를 댔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현실적으로 이건 힘들고.. 등등. 그런 이유들 속에 내 속살을 감추고 살았다. 내 민낯을 마주하기 싫어서였다. 내 자신없는 모습, 현실조건에 지고마는 마인드, 나약한 마음들… 내가 처한 조건상 악을 써도 이겨내기 힘들다는 생각이 나를 더 나락으로 내던졌는지도 몰랐다. ‘이것보다 더 어떻게 힘을 내?’ 그런 생각. 김연경은 그런 걸 두고 ‘루저 마인드’ 라고 했다. 루저마인드. 그래 맞다. 결국 어려운 현실을 이야기하고, 나의 조건들로 투덜대고, 운명을 탓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모두 나의 끝없는 실패를 합리화하고 내 안의 약한 나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쳐놓은 방패막 같은 거였지.

그럼에도 끝없이 현실 조건에 부딪치긴 했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려고 수없이 했던 노력들. 남들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발악에 가까웠을지 몰라도 나 자신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더 이유를 대지 말고, 오롯이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마음에만 집중해서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된다는 생각, 바꿔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한때 책 <시크릿>을 보고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도 괜스레 그것을 믿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악화일로를 겪던 현실에 마인드가 자꾸 누그러져서 그런 결과를 낳았다. 나는 여전히 나의 현실에 맞서 분투 중이고, 끝없이 실패하면서도 다시 부딪치는 중이다.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것이고, 타고난 운명은 바꿀 수 없는 거라고 하고, 무지하게 달려드는 걸 두고 ‘바위에 계란치기’라고 한다. 그럼에도 원래라면 초년에 싹이 밟혀서 사람 구실 하나 못 하고 살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온 것 또한 끝없이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만든 결과였다. 낡은 마인드만 조금 바꾸면 될 거다. 하고자 하는 걸 명확하게 하고 본디 편하게 할 수 없는 처지라는 걸 명백하게 인정한 다음 그냥 할 수 있는 걸 조금씩 한다고만 생각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이상이 현실을 이끌어야 한다는 말과 같은 거지.

인생은 괴로움의 연속이다라는 생각

Ⅰ 문제의 시작

어느 날 인간은 하나의 질문과 조우한다. “인생은 괴로움의 연속이다.” 한 번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하면, 주기적으로 그것은 눈앞에 등장한다. 어떤 때는 무의미의 모습으로, 때로는 고통의 형상으로, 가끔은 슬픔으로. 아지랑이처럼 피어난 질문은 심장에 박힌 대못처럼 죽기 전까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 지옥의 형벌처럼 따라다닌다. 청춘의 시기에는 알 수 없다. 인생 도처에 그토록 괴로움이 만연한지를, 또 기쁘고 행복한 순간은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기적 같은 순간이라는 것을.

현실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철장에 놓인 감옥이다. 타고난 운명은 바꿀 수 없고,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괴로움과 무의미의 공허함에 시달릴 뿐이다. 어느 날 문득 든 ‘인생은 무의미하다’라는 생각은 다리를 묶는 질곡과 손목에 묶인 수갑 등 전신을 휘감는 오라가 되어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어떤 질병의 발현, 헌신을 다했던 직장에서의 실직, 가족의 질병이나 사고, 폐업 등에서 시작된 슬픔, 모든 걸 바쳐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 끝내 꿈을 실현시킬 수 없다라는 자각에서 오는 허기가 포함된다. 이런 생각은 대체로 교통사고 같은 급작스럽지만 우발적인 사고에 의해 생성되며, 그때 비로소 인간은 철학을 하기 시작한다. ‘왜 나한테만’ 라는 질문을 묻기 시작하는 것이다.

Ⅱ 문제의 지속

인생은 롤러코스터 같아서 인생살이에서 문제는 모습만 바뀌어가며 등장하기 마련이다. 언젠가는 이별에 힘겨워하고, 언제는 가족이 겪는 고통 때문에, 또 다른 때에는 갑자기 발병한 병에, 느닷없던 사고에, 믿음의 배신에, 실직과 실패에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것이다. 물론 인생의 초기에는 인생의 밝은 측면을 굳건히 믿고 있었을 수 있고, 해낼 수 있고 바꿔낼 수 있다고 믿지만, 인생에는 도저히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 혼자서는 아무래도 안 되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굳건했던 멘탈에 조금씩 금이 가고, 건강했던 몸이 낡아가고, 버티거내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사실을 직면하면서 인간은 약해진다. 인간은 몸만 늙지 않는다. 정신도 낡고 헤질 수 있다.

Ⅲ 인내의 극한

점점 인내하기 힘들어진다.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났지? 나는 왜 이런 일을 당해야만 했지?와 같은 생각은 인내심을 갉아먹는 좀과 같다. 실직해서 막막하고, 꿈을 못 이뤄서 허망하고, 헤어져서 슬프고, 사고나서 힘들고, 믿던 이들에게 배신당해 괴롭고… 그런 일들이야 수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지만, 진정한 문제는 그런 일들은 끝없이 이어져 오는 데 반해 그것을 견디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변화한 삶의 조건들을 새로운 기본값으로 생각하며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데 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아토피가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최중증의 아토피였고 면역질환들로 평생을 고통받았다. 눈 수술을 하고 약이 병을 부르고 병이 약을 부르는 굴레 속에서 청춘을 허비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그렇게 시작된 온갖 트라우마들로 늘 괴로웠다. 내가 당면한 현실 조건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병마를 이겨낼 수 없고, 아버지에게서 벗어날 수도 없는 그 절망의 늪은 어릴 때 나를 괴롭히던 정신의 병이었다. 그럼에도 30대가 되면 나아질 거야, 신약이 나오면 좋아질 거야, 40대가 되면… 이런 생각을 끝없이 했다. 미래에는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 그 생각이 나를 살게 했다. 그러나 고통은 모습을 바꿔서 나를 찾아왔고, 이와 비슷한 일은 끝 간 데 없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인생의 대부분은 고통일 수밖에 없고, 행복하고 즐겁게 만드는 일은 아주 드물게 우리를 찾아오는 기적 같은 순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행복한 순간이 더 소중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Ⅳ 변화의 시작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단 하나 밖에 없다. 인생은 고통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 바로 그것이다. 현실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고 현재의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며, 면역질환을 평생 앓았고 지금도 앓고 있으며, 보통 사람이 할 만한 경험의 대부분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지금 아프다고 느끼는 감각, 그마저도 혼자 견뎌야 한다는 고독, 그럼에도 돈을 벌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은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다만 그 생각, 지금 내가 이런 현실에 처해 있고 앞으로도 달라지기 어렵다는 그 생각만은 바꿀 수 있다. 아주 뻔하지만 그래서 진실인 말은 생각을 그곳에서 꺼내오는 일인 것이다.

Ⅳ 가치관의 습관화

모든 건 변화한다. 달라진다. 태어나면 죽고, 죽은 자리엔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변화할 수 있다. 현실은 바꿀 수 없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생각은 바꿀 수 있다. 그 방법은 연습이다. 한 번에 모든 걸 바꿀 수는 없다.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가치관을 바꾸고,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를 바꾼다. 습관만이 지독한 현실에서 인간을 무너뜨리지 않는 굳건한 지지대가 된다.

생각과 감정은 쉽게 변한다. 자고 나면 달라지고, 다른 행동을 하면 달라진다.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고, 슬픔에 빠지는 순간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것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 잠깐의 전환으로 심각한 부정적 사고와 감정에서 멘탈을 구출하는 것이다. 부정적 감정에 자주 빠져든다면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 청소를 하거나 산책, 샤워, 요리, 통화 등을 해보자. 현실의 괴로운 문제들로 짓눌려 있던 멘탈이 잠시 환기의 시간을 가지게 되면 많은 것이 달리 보인다. 그래서 힘들 때 일을 더 열심히 해서 잊으려고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물론 문제를 외면만 해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하지만 멘탈의 균형을 되찾고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과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쏠려 있을 때 그 감정들을 무시하고 문제에 달려드는 것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너무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있거나 기쁜 나머지 들떠 있을 때는 냉정을 찾기 어렵고 제대로 문제를 파악하거나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다소간 부정적 감정들을 해소하고 기분을 전환하고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린 후에 문제를 바라볼 때에는 자신이 세상을 보는 렌즈를 깨끗이 씻은 후에 보는 것이기 때문에 달라진다. 모든 건 어떤 렌즈로 세상과 나를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고, 내 감정과 생각에 휘둘리느냐 나 자신이 컨트롤 하느냐의 싸움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바꿀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 나의 경우는 내 몸이다. 아토피로 시작된 여러 질환에 몇십 년 짓눌리며 지내다보니, 그리고 해결할 수 없는 다른 문제들을 숱하게 만들어낸 것에서 도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로는 너무 아파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고, 그 무엇도 지금 내 현실을 바꿀 수 없음에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 다만 그 생각에 오래 붙잡히지 않으려 하는 것, 그런 생각이 습관이 되고 가치관이 되도록 두지 않는 것만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생각한다.

좋은 유전자를 받고 태어나서, 좋은 환경에서 저들은 괜찮은 거고, 나는 불운한 운명을 타고나서 이런 사고를 당하고 괴로움을 겪는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그것이 오래되면 생각이 굳어져 습관이 되고 가치관이 된다. 인간을 믿을 수 없고, 패배주의적 사고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자조적인 마인드는 불만과 불안을 키우고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낸다. 자신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생각이 자신을 끝없이 망가뜨리고 있는 것으로 마치 독약을 스스로 들이키는 것과 같다.

지독한 현실이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생각마저 인간을 무너뜨리게 둘 수는 없지 않을까.

나를 위한 시간

“단 90초도 저를 위해 요리를 한 적이 없습니다.”

  • 최강록 요리사, <흑백 요리사 2>의 결승전에서.

그 말이 이후 “그런 저에게 이런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라는 말이 이어진다.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하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걸 맞춰주고, 누군가의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할 줄은 알면서도 스스로를 위한 위로는 뒷전에 둔 채 살아가던 나에게도 작은 울림을 주던 회차였다. 전국에 계시는 모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찬가와 같은 말들.

돌아보면 일과 생활 어디에서도 진정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 없었다. 일은 늘 남의 일을 해주는 것에 그쳤고, 좋은 관계를 맺어야 일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충을 듣고, 근심과 슬픔을 나누는 것도 모두 타인을 위한 일이었다. 그러다 연말과 연초, <흑백 요리사2>를 보며 나는 무엇에 목숨을 걸고 있는가, 목숨을 내어주어도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위한 시간은 정말 있었나 하는 질문들이 계속 입속을 맴돌았다. 아프고 괴롭고 힘든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나 자신의 진짜 마음을 들여다 보고 진짜 나로 거듭나기 위한 시간을 보냈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아픈 것을 해결하기 위해, 일을 조금 더 잘 하기 위해,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너무 많은 ‘척’을 하며 살았다. 최강록이 말했던 바로 그 ‘척하는 인생’ 이 내게도 있었다. 늦었다면 늦었지만, 이제라도 조금 외피는 걷어내고 순수한 열정을 쏟아붓던 요리사들, 셰프들처럼 나도 조금 더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려고 노력해보자 했던 시간이다.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는 것

어느 날 문득

어느 날, 당신은 아무도 진짜로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그리고 당신이 원했던 건 뭐든지 할 수 있었단 걸 알게 될 거야. one day, you will realize that no one was really watching, and you could have done whatever you wanted

멋부리려 하지마

멋 부리려 하지 마라. 네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괴짜처럼 집착하라. 열정은 무관심보다 너를 더 먼 곳으로 데려다 줄 테니까. stop trying to be cool. be nerdy and obsessive about the things you love. enthusiasm will get you farther than indifference.

세상에 태어난 지 오래지 않은 시절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부모님이 세상의 전부가 되지만, 오랜 세월을 살다 보면 다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나 또한 한때 이런저런 책을 읽고, 사회에서 여러 일을 겪으며 조금은 세상은 안다고 생각했고 남들은 쉽게 흘려보내는 걸 잘 포착한다고 여겼다. 착각은 내게서 많은 걸 앗아갔다. 한국 사회의 문화 속에서 한 발자국도 못 벗어나면서.

당신은 누구인가요

Who are you?…

한 남자가 있다.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어느날 조금 더 독립적인 삶을 살기로 마음 먹은 그는 글쓰기를 통해 자유와 독립을 찾는다. 어느 날, 길을 걷다 자전거와 부딪치는 사고를 당하게 되고, 거기서 알게 된 베아트리체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준다. 그 글에 베아트리체는 매료되었고 그녀가 누군가에게 글을 보여주고, 그가 또 다른 이에게, 또 다른 이에게 보여주다가 많은 출판사를 보유한 사람에게까지 넘겨지고 또 감동을 주어서 출간을 하기에 이른다. 초판은 다 나가고 재판을 찍으며 남자는 유명세를 탄다. 일상은 별반 다를 것 없지만 (길을 걷는다 해도 누군가가 알아보는 이가 없다) 그는 왠지 자신이 순식간에 빌딩의 꼭대기에 올라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 괴리감.  한 여자가 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동안 정든 가족이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하며 새로운 삶을 꿈꾼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는 그녀는 극장에 가게 되는데, 이미 연극의 스토리를 줄줄 꿰고 있던 그녀는 주인공이 마지막 리허설에 나타나지 않은 틈에 서게 된 무대에서 찬사를 받는다. 그리곤 아침에는 연극학교에 가고 오후에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여자는 남자의 집에 배달을 간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대화를 하게 되고, 여자는 다음 주에 있을 첫 공연에 들떠 있고 남자는 한순간의 운으로 유명해졌지만 자신에게 재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있다. 여자는 말한다. “나는 당신을 알고 있어요. 당신이 쓴 많은 책을 읽었어요. 당신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당신의 많은 책은 오랫동안 내 유일한 안식처였어요. 내가 어려웠던 시기에 아주 훌륭했던 친구였죠. 때로는 운을 좀 도와야 해요. 내 연극의 무대는 내 것이지만 영감은 당신의 책에서 받은 거예요.”  남자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어떤 고마움을 느낀다. 막연한. 여자는 홀연히 떠나고, 남자는 번뜩이는 무언가를 느끼며 다음 연극무대에서 다시 보자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녀가 전해준 택배상자를 열어보는데. 안은 텅 비어 있다.  “이봐요. 택배 상자에 아무것도 없어요!” “확실해요? 다시 한 번 보세요. 이번에는 운이 좋을 수도 있어요!” 상자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자신의 삶은 자신이 만들어간다. 삶은 비어있는 상자 같은 것, 그것에 무엇을 채울지는 본인에게 달렸다. 그것에 운을 담을 수도, 자신이 못미더워하는 자기 재능을 담을 수도 있다. 우선은 담고, 믿는 것이다.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고 그것이 괜찮을 수도 있다는. 상자를 믿고 안 믿고는 자신에게 달렸다. 그 안에 온갖 선물이 담겨 있다고 믿는 자와 아무것도 없다고 불평하는 자의 삶은 180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운이나 타인의 평가 같은 것은 텅 빈 상자와 같은 것이니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삶에서 우연히 주어진 것을 감사하라는 의미도 있다. 자신에게 우연히 찾아온 기회로 성공한 남자, 그는 그것이 단지 운일 뿐이며 자신의 재능 없음이 만천하에 드러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러나 그녀는 때로는 운을 스스로 도와야 한다는 말을 한다. 자신을 찾아온 운을 자신이 이용할 줄도 알고 그것에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지나친 걱정과 근심, 불안은 이미 찾아온 운마저 달아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은 아닐까. 남자는 자신의 책은 많이 팔려도 거리에 나가면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모르겠다고 실토했지만, 여자는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 자신처럼 힘들 때 좋은 친구가 되고 영감을 주고 기쁨을 주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그러니 자신이 하는 일을 빈 상자를 만드는 일로 치부하지 말고 그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걸 말하고 있다.

눈에 띈 댓글 하나.

  • When the man finds out and tells her the box is empty, she asks him to look again. The second time he looks, he understands that it was not a thing that she delivered. What she delivered was hope, love, gratitude and a sense of meaning to his life. What moved the man was the realization that his work impacted, helped, befriended and influenced a life. That realization moved him to work again on his craft with heart and passion.
  • (남자가 상자가 비어 있다고 말하자 그녀는 다시 한 번 봐달라고 부탁합니다. 두 번째로 다시 본 남자는 여자가 전달한 것이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녀가 전달한 것은 희망, 사랑, 감사, 그리고 그의 삶에 대한 의미였습니다. 그가 감동한 것은 자신의 일이 한 삶에 영향을 주고, 도움을 주고, 친구가 되고,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그 깨달음은 그가 다시 진심과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매진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