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시선

나는 늘 책상 위에서의 작곡은 없다고 주장해왔다. 어떤 공간에 있건 넋이 나간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모든 예술가들에게 하는 이야기다. 물론 보통 사람들에게도 넋을 빼고 멍하니 산을 바라보는 시간은 필요하다. 넋을 잃는다는 건 어떤 상태일까? 이를테면 세 가지의 공간과 세 가지의 시간 속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넋을 놓는 법을 알면 한 사물을 보고 여러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테이블 위의 이 케이크를 마보는 나는 이케이크가 참 맛있다는 생각과 함꼐 1971년에 할아버지가 사왔던 케이크의 맛을 떠올리고, 내년에 필리핀에서 딸이 들어오면 케이크를 사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세 가지 시간이 한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어떤 눈빛이 되고 그런 눈빛일 때 그를 보는 이들은 말한다. 그가 사색하는 중이라고······ -김태원 『우연에서 기적으로』 59p <넉을 잃다2> 2011

한때 부활의 김태원의 화법을 좋아했다. 자신이 곡을 줬던 가수 장나라의 노래 <5월의 눈사람>을 들으며, “눈사람을 만들던 그때의 이야기죠, 그건 8월의 크리스마스의 영향을 받은 거죠, 그것보다 더 슬픈 상황이죠 5월의 눈사람이니까… 눈사람을 그리워한다면 가슴에 항상 있겠죠, 여름에도 그 노래를 들으면 겨울이 될 거 아니야” 는 말. 오래전 읽었던 그 책의 내용들처럼 늘 은유와 서정성이 있는 음악처럼 남다른 감성과 그 시선이 좋았다. 오래전 <남자의 자격>에서도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학생의 질문에 “비밀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해. 너를 계속해서 알고 싶도록.” 그런 말을 했었지. 만약 나도 처음부터 슬픔의 여러 시간과 층위를 볼 수 있고, 미소 너머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지금쯤 그 숱한 고통도 조금은 덜 무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것은 기억해도 무엇을 봤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것은 기억해도 무엇을 봤는지는 기억하지 못해요.”

우연히 보게 되었던 유튜브에서 Megan Tan이 한 말. 영화 제작자이자 크리에이터로서 사물(Things)이 아닌 느낌(Feel)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 방법들을 활용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교토(Kyoto)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본은 갈 수 없지만 다다미 문은 만들 수 있다, 조명을 조절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소품을 활용할 수 있다와 같은 얘기들을 하며 위의 말을 했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 확실히 나는 무얼 봤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고 영상의 분위기와 느낌만 잔상에 남아 있다. 그가 옳았다.

‘중요하지 않은 걸 잘 하는 것’ 보다 ‘중요한 걸 그럭저럭이라도 하는 것’ 이 더 필요하다. 아무거나 잘 해내는 것보다는 정말 필요로 하고 중요한 일을 그럭저럭이라도 하는 것. 말처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세스 고딘은 관심과 신뢰를 얻으세요 라고 했다. 어떤 비즈니스를 하느냐에 따라 중요한 것은 다르다라고. 영상 제작 또한 ‘사람들이 무엇을 보게 될지’에만 신경쓰면 정작 중요한 어떤 ‘느낌을 주려 하는지’는 뒷전이 된다. 주객이 전도되는 건 마냥 쉬운 일이다.

오래전 방송 실험을 본 적 있다. 한 카페에서 요란한 옷을 입고 한참이나 실험 대상자 옆에 있었던 사람. 한참 후에 대상자에게 옆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입은 옷이나 색깔 등이 기억나느냐고 물었고, 대부분의 사람이 기억하지 못했다. 결론은 ‘당신 생각보다 사람들은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였는데, 사실은 그런 명명백백한 사실보다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쏟지 않을 판단력 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했다. 쓸데 없는 일에 들이는 에너지를 줄여서 보다 중요한 일에 매진하는 것. 그건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일보다 인생 전체를 잘 살아가는 근본적 힘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는 시간이었다.

이상이 현실을 이끌어야 한다

“Such widespread phenomena as depression, aggression, and addiction are not understandable unless we recognize the existential vacuum underlying them. Ever more people today have the means to live, but no meaning to live for.” - Viktor Frankl <Man’s Search of Meaning>

“우울증, 공격성, 중독과 같은 이처럼 널리 퍼진 현상들은 그 밑에 깔린 실존적 공허를 인식하지 않으면 이해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살아갈 의미는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언젠가 이 글을 읽었다. 이글을 인용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현명한 삶의 중심 원칙 중 하나는 이상주의가 실용주의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현실을 이끌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청구서, 건강 문제, 가족의 요구와 같은 삶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어야 하지만, 이상은 항상 북극성처럼 있어야 합니다. 그 북극성이 삶의 방향과 분위기를 결정하니까요.” 그것을 읽으며 나의 이상과 꿈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평생 물었을 것이다. 나의 이상은 무엇인지. 나의 북극성은 어디에 있는지를.

사실 글을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관찰했고 그것이 마음에 남았는지 아닌지, 내가 바라보는 현실의 모양과 색깔은 어떠한지, 인간들의 모습과 우리의 역사와 우리가 가진 것, 그리고 잃어버린 것들을 알아내기 위하여…

그것은 글을 쓰지 않는 한 명료한 생각과 가치관을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알고 있지 하며 뭉뚱그리고 넘어가는 것과 명료하게 글로 표현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를 만드는 것이기도 해서다. 그냥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 보고 들은 걸 생각하는 것, 그걸 말하는 것과 글로 남기는 것의 각각에는 뛰어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생각의 줄기는 수없이 새겨진 글들 사이에서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는 거니까.

그러다 보면 내가 바라는 나의 이상, 나의 북극성도 조금은 선명해지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나의 현실은 척박했다. 척박함을 이기려면 아름다운 이상이 필요했지만, 생각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수많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나는 빛을 따라가며 살고 싶기에, 내 삶의 방향을 바로 잡고 싶기에…

관심과 신뢰를 얻으세요

Earn attention and trust. Spend time and money on that, and the rest will take care of itself. - Seth Godin 관심과 신뢰를 얻으십시오. 그것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출처

세스 고딘은 말했다. 어떤 자산을 얻을 것인가? 얻는 목적은 무엇인가? 누가 위험을 감수하고 이익을 얻는가? 그 질문은 간단하면서도 무겁다. 공간(메인 스트리트)을 통해 쉬운 관심을 얻는 대신 고정비와 유지비 등 리스크를 떠안는 일쉽게 관심을 얻기는 어렵지만 관계망(구독자, 팬)을 통해 경험을 선사하여 관심과 신뢰를 축적하는 일 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무엇을 하고자 하며 왜 하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 이유다. 방향이 없으면 늘 휘청일 수밖에 없다.

관심과 신뢰를 얻는 일은 꾸준하고 오랫동안 묵묵하게 걸어가는 인생길의 동료를 얻는 일이다. 자기 개성을 잃지 않고, 인간다움을 지키고,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과 익숙함, 그리고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매력을 꾸준하게 표출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이게 어떻게 비춰질까를 의식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을 꾸준하게 해나가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한다. 마케터인 세스 고딘은 비즈니스와 마케팅에 대해 말한 것이겠지만, 나라는 사람 그 자체는 시장의 상품과는 달라서 조금 더 스스로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오래전에 관심과 신뢰를 잃었다. 십수 년간 블로그를 했고 글을 썼지만, 늘 패배에 머물렀으므로 지켜보던 사람들은 지쳐서 하나둘씩 떠났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나를 붙들고 여전히 분투중이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사람들은 고난을 이겨내고, 자기만의 서사를 쌓고, 자기 개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사람에 매력을 느끼지, 늘 고단한 사람에게는 싫증을 느낄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나를 지킨다. 조금 더 건강하고 맑은 정신을 소유하기 위해서. 세스 고딘의 말대로 탄탄한 사회 관계망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 전에 건강한 몸과 정신이 먼저이니까. 조금이나마 스스로를 건져내야 한 개인으로도, 비즈니스맨으로도, 콘텐츠 제작자로서도 중요한 지점에 도달할 출발점에 설 수 있을 테니까.

나를 위한 시간

“단 90초도 저를 위해 요리를 한 적이 없습니다.”

  • 최강록 요리사, <흑백 요리사 2>의 결승전에서.

그 말이 이후 “그런 저에게 이런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라는 말이 이어진다.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하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걸 맞춰주고, 누군가의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할 줄은 알면서도 스스로를 위한 위로는 뒷전에 둔 채 살아가던 나에게도 작은 울림을 주던 회차였다. 전국에 계시는 모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찬가와 같은 말들.

돌아보면 일과 생활 어디에서도 진정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 없었다. 일은 늘 남의 일을 해주는 것에 그쳤고, 좋은 관계를 맺어야 일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충을 듣고, 근심과 슬픔을 나누는 것도 모두 타인을 위한 일이었다. 그러다 연말과 연초, <흑백 요리사2>를 보며 나는 무엇에 목숨을 걸고 있는가, 목숨을 내어주어도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위한 시간은 정말 있었나 하는 질문들이 계속 입속을 맴돌았다. 아프고 괴롭고 힘든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나 자신의 진짜 마음을 들여다 보고 진짜 나로 거듭나기 위한 시간을 보냈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아픈 것을 해결하기 위해, 일을 조금 더 잘 하기 위해,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너무 많은 ‘척’을 하며 살았다. 최강록이 말했던 바로 그 ‘척하는 인생’ 이 내게도 있었다. 늦었다면 늦었지만, 이제라도 조금 외피는 걷어내고 순수한 열정을 쏟아붓던 요리사들, 셰프들처럼 나도 조금 더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려고 노력해보자 했던 시간이다.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는 것

어느 날 문득

어느 날, 당신은 아무도 진짜로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그리고 당신이 원했던 건 뭐든지 할 수 있었단 걸 알게 될 거야. one day, you will realize that no one was really watching, and you could have done whatever you wanted

멋부리려 하지마

멋 부리려 하지 마라. 네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괴짜처럼 집착하라. 열정은 무관심보다 너를 더 먼 곳으로 데려다 줄 테니까. stop trying to be cool. be nerdy and obsessive about the things you love. enthusiasm will get you farther than indifference.

세상에 태어난 지 오래지 않은 시절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부모님이 세상의 전부가 되지만, 오랜 세월을 살다 보면 다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나 또한 한때 이런저런 책을 읽고, 사회에서 여러 일을 겪으며 조금은 세상은 안다고 생각했고 남들은 쉽게 흘려보내는 걸 잘 포착한다고 여겼다. 착각은 내게서 많은 걸 앗아갔다. 한국 사회의 문화 속에서 한 발자국도 못 벗어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