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문제의 시작
어느 날 인간은 하나의 질문과 조우한다. “인생은 괴로움의 연속이다.” 한 번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하면, 주기적으로 그것은 눈앞에 등장한다. 어떤 때는 무의미의 모습으로, 때로는 고통의 형상으로, 가끔은 슬픔으로. 아지랑이처럼 피어난 질문은 심장에 박힌 대못처럼 죽기 전까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 지옥의 형벌처럼 따라다닌다. 청춘의 시기에는 알 수 없다. 인생 도처에 그토록 괴로움이 만연한지를, 또 기쁘고 행복한 순간은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기적 같은 순간이라는 것을.
현실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철장에 놓인 감옥이다. 타고난 운명은 바꿀 수 없고,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괴로움과 무의미의 공허함에 시달릴 뿐이다. 어느 날 문득 든 ‘인생은 무의미하다’라는 생각은 다리를 묶는 질곡과 손목에 묶인 수갑 등 전신을 휘감는 오라가 되어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어떤 질병의 발현, 헌신을 다했던 직장에서의 실직, 가족의 질병이나 사고, 폐업 등에서 시작된 슬픔, 모든 걸 바쳐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 끝내 꿈을 실현시킬 수 없다라는 자각에서 오는 허기가 포함된다. 이런 생각은 대체로 교통사고 같은 급작스럽지만 우발적인 사고에 의해 생성되며, 그때 비로소 인간은 철학을 하기 시작한다. ‘왜 나한테만’ 라는 질문을 묻기 시작하는 것이다.
Ⅱ 문제의 지속
인생은 롤러코스터 같아서 인생살이에서 문제는 모습만 바뀌어가며 등장하기 마련이다. 언젠가는 이별에 힘겨워하고, 언제는 가족이 겪는 고통 때문에, 또 다른 때에는 갑자기 발병한 병에, 느닷없던 사고에, 믿음의 배신에, 실직과 실패에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것이다. 물론 인생의 초기에는 인생의 밝은 측면을 굳건히 믿고 있었을 수 있고, 해낼 수 있고 바꿔낼 수 있다고 믿지만, 인생에는 도저히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 혼자서는 아무래도 안 되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굳건했던 멘탈에 조금씩 금이 가고, 건강했던 몸이 낡아가고, 버티거내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사실을 직면하면서 인간은 약해진다. 인간은 몸만 늙지 않는다. 정신도 낡고 헤질 수 있다.
Ⅲ 인내의 극한
점점 인내하기 힘들어진다.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났지? 나는 왜 이런 일을 당해야만 했지?와 같은 생각은 인내심을 갉아먹는 좀과 같다. 실직해서 막막하고, 꿈을 못 이뤄서 허망하고, 헤어져서 슬프고, 사고나서 힘들고, 믿던 이들에게 배신당해 괴롭고… 그런 일들이야 수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지만, 진정한 문제는 그런 일들은 끝없이 이어져 오는 데 반해 그것을 견디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변화한 삶의 조건들을 새로운 기본값으로 생각하며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데 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아토피가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최중증의 아토피였고 면역질환들로 평생을 고통받았다. 눈 수술을 하고 약이 병을 부르고 병이 약을 부르는 굴레 속에서 청춘을 허비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그렇게 시작된 온갖 트라우마들로 늘 괴로웠다. 내가 당면한 현실 조건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병마를 이겨낼 수 없고, 아버지에게서 벗어날 수도 없는 그 절망의 늪은 어릴 때 나를 괴롭히던 정신의 병이었다. 그럼에도 30대가 되면 나아질 거야, 신약이 나오면 좋아질 거야, 40대가 되면… 이런 생각을 끝없이 했다. 미래에는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 그 생각이 나를 살게 했다. 그러나 고통은 모습을 바꿔서 나를 찾아왔고, 이와 비슷한 일은 끝 간 데 없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인생의 대부분은 고통일 수밖에 없고, 행복하고 즐겁게 만드는 일은 아주 드물게 우리를 찾아오는 기적 같은 순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행복한 순간이 더 소중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Ⅳ 변화의 시작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단 하나 밖에 없다. 인생은 고통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 바로 그것이다. 현실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고 현재의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며, 면역질환을 평생 앓았고 지금도 앓고 있으며, 보통 사람이 할 만한 경험의 대부분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지금 아프다고 느끼는 감각, 그마저도 혼자 견뎌야 한다는 고독, 그럼에도 돈을 벌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은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다만 그 생각, 지금 내가 이런 현실에 처해 있고 앞으로도 달라지기 어렵다는 그 생각만은 바꿀 수 있다. 아주 뻔하지만 그래서 진실인 말은 생각을 그곳에서 꺼내오는 일인 것이다.
Ⅳ 가치관의 습관화
모든 건 변화한다. 달라진다. 태어나면 죽고, 죽은 자리엔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변화할 수 있다. 현실은 바꿀 수 없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생각은 바꿀 수 있다. 그 방법은 연습이다. 한 번에 모든 걸 바꿀 수는 없다.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가치관을 바꾸고,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를 바꾼다. 습관만이 지독한 현실에서 인간을 무너뜨리지 않는 굳건한 지지대가 된다.
생각과 감정은 쉽게 변한다. 자고 나면 달라지고, 다른 행동을 하면 달라진다.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고, 슬픔에 빠지는 순간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것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 잠깐의 전환으로 심각한 부정적 사고와 감정에서 멘탈을 구출하는 것이다. 부정적 감정에 자주 빠져든다면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 청소를 하거나 산책, 샤워, 요리, 통화 등을 해보자. 현실의 괴로운 문제들로 짓눌려 있던 멘탈이 잠시 환기의 시간을 가지게 되면 많은 것이 달리 보인다. 그래서 힘들 때 일을 더 열심히 해서 잊으려고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물론 문제를 외면만 해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하지만 멘탈의 균형을 되찾고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과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쏠려 있을 때 그 감정들을 무시하고 문제에 달려드는 것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너무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있거나 기쁜 나머지 들떠 있을 때는 냉정을 찾기 어렵고 제대로 문제를 파악하거나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다소간 부정적 감정들을 해소하고 기분을 전환하고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린 후에 문제를 바라볼 때에는 자신이 세상을 보는 렌즈를 깨끗이 씻은 후에 보는 것이기 때문에 달라진다. 모든 건 어떤 렌즈로 세상과 나를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고, 내 감정과 생각에 휘둘리느냐 나 자신이 컨트롤 하느냐의 싸움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바꿀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 나의 경우는 내 몸이다. 아토피로 시작된 여러 질환에 몇십 년 짓눌리며 지내다보니, 그리고 해결할 수 없는 다른 문제들을 숱하게 만들어낸 것에서 도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로는 너무 아파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고, 그 무엇도 지금 내 현실을 바꿀 수 없음에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 다만 그 생각에 오래 붙잡히지 않으려 하는 것, 그런 생각이 습관이 되고 가치관이 되도록 두지 않는 것만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생각한다.
좋은 유전자를 받고 태어나서, 좋은 환경에서 저들은 괜찮은 거고, 나는 불운한 운명을 타고나서 이런 사고를 당하고 괴로움을 겪는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그것이 오래되면 생각이 굳어져 습관이 되고 가치관이 된다. 인간을 믿을 수 없고, 패배주의적 사고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자조적인 마인드는 불만과 불안을 키우고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낸다. 자신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생각이 자신을 끝없이 망가뜨리고 있는 것으로 마치 독약을 스스로 들이키는 것과 같다.
지독한 현실이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생각마저 인간을 무너뜨리게 둘 수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