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 불안의 세계에 나를 밀어넣었다. 잠시도 안정을 허락치 않은 심판자로서, 너 스스로 얼만큼 견딜 수 있는지 보겠다는 고문 집행자로서 살았다. 고통과 열병을 운명처럼 받아들고 지내왔다. 문제를 벗어나려 한다지만 실상은 문제를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 일상의 모습들.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내게도 다른 미래가 있을까? 나도 나를 알 수 없어서 조그맣게 기록해둔다. 업데이트가 6개월 이상 없다면 이미 나는 세상에 없는 존재일 것이다.
Last updated: 2026-05-18
TIMELINE
- 첫숨을 쉰 날. 아토피를 달고 태어났다.
- 동생의 탄생.
- 초등학교 입학. 끝없는 이사. 축구선수를 꿈꿨다.
- 중학교 입학. 폭력과 증오만 가득했던 학교생활.
- 작곡의 꿈. 축구처럼 현실에 파묻혀서 사라졌다.
- 고등학교 입학. 사랑의 계절.
-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라며 독립한 아버지를 따라 이사. 거듭된 실패와 고통의 시작.
- 새집증후군 발발. 혼자 걷지도 못할 정도로 극심했던 2차감염 증세.
- “우선 살고 봐야지요"라던 담임선생님의 말. 그 후로 평생 사는 게 먼저가 되지 못했다.
- 극심한 아토피증세. 모두 날 보고 피했다. 비명지르고 도망가는 이들. 트라우마의 시작.
- 망막박리증. 좌안 실명.
- 백내장. 우안 수술. 양눈이 안 보이던 내게 엄마가 밥을 떠먹여 주던 병실의 풍경.
- 200x. 파산. 슬레이트 집으로 이사. 끝없는 수렁의 늪. 사채업자에게 나를 끌고 가던 아버지.
- OKC(치성각화낭종) 수술. C형 간염치료 등.
- 사이폴엔 면역억제제로 그나마 사람 구실하던 시기였다. 엄마는 나를 끌고 성당에 갔다. 내 트라우마가 시험받았다.
- 성당 청년회로 여러 봉사활동. 수녀원, 아동 요양원 등. 살아 있음의 가치를 처음 느꼈던 시간.
- 다시 시작된 부작용. 면역억제제, 스테로이드는 나를 좀먹었다. 여러 사찰을 전전.
- 201x. 집에 화재. 죽을 뻔했으나 새벽녘의 익명인 덕분에 살았다.
- 살아서 좋은 줄은 몰랐으나 살았기 때문에 나 또한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게 된 시기.
- 취업준비. 수백군데에서 떨어지는 것에 익숙해지던 나날이었다.
- 부산 직능원. 온갖 장애인과 생활하며 다양한 군상을 접했다. 여러 자격증을 취득했고 수없이 기업체에서 탈락.
- 첫 취업. 만32세. 서울의 작은 스타트업. 콘텐츠 에디터였다. 고시원생활.
- 기획자로 전직과 눈숫술.
- 서비스기획자로 전직(?)이 되었지만, 대표의 악랄함에 스트레스가 심했던지 눈이 점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위험도를 핑계로 수술을 거부하던 병원들. 겨우 아산병원의 한 의사 덕분에 수술을 했고 하나 남은 눈을 지킬 수 있었다.
- 제주로 이사. (애월면 -> 안덕면)
- 여태까지와 같은 생활을 하면 안 된다는 가족(엄마, 동생)의 판단으로 동생이 자처해서 나를 도우러 왔다. 제주 한라병원에서 알레르기 면역 치료를 계속했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 치료를 제쳐두고 생활에만 집중한 시간.
- 더 내려놓았다. 나을 수 있다는 것마저 놓아버린 시기. 오히려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아서 17년도의 봄날을 잠깐이나마 만끽할 수 있었다.
- 부산으로 이사.
- 동생은 졸업을 위해, 나는 새로운 생활을 위해 돌아온 시간. 미래는 없었다.
- 취업전쟁.
- 또다시 수백개의 원서와 수없이 치르는 면접에서 낙방을 거듭했다. 치료와 병행하며 체력을 갉아먹었힌 나날.
- 아토피 신약 듀피젠트(듀필루맙) 임상시험 시작.
- 이것 때문에 대전의 국과수에서 탐탁지 않게 여기고, 내 치료도 힘들어 서울로 터를 옮겼다.
- 한 대기업에 특채로 입사.
- 어쩌다 기획자/운영으로 다시 일하게 되었다. 베트남인력, 한국파견인력 등을 관리하며, 기획일을 도왔다.
- 상무픽으로 들어온 놈팡이가 나의 선임이었다. 매일 2인분 이상의 일을 했고 욕은 욕대로 얻어먹었다.
- 코로나19의 시작. 업무 부담은 줄어들지 않았다.
- 코로나19 장기화. 일과 잠뿐인 생활.
- 나는 선임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덫에 걸린 듯했다. 팀장들도 도망가고, 날 등한시했다. 상무가 꽂은 애인데 어떡하랴. 개인 이기주의의 극치인 조직생활에 지독한 회의감이 들던 나날. 끝없는 이직준비에 들어갔다.
- 정신과를 다녔다. 번아웃이 온 것 같아요. 의사는 그럴 만하다면서 약을 주었다.
- 기획 콘텐츠를 쓰고, 홈페이지를 만들고, 포트폴리오를 계속 쌓았다. 벗어나야 한다. 그 일념으로만 살았다.
- 깊은 회의감과 퇴사, 이직과 끝없는 고행의 시작.
- 세번째 팀장은 데이터분석 업무를 잘해내면 그곳에서 빼내어 다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조정해주겠다 했다. 말뿐인 약속이었다.
- 6월. 또다시 이용만 당했다는 생각에 이직을 준비했다.
- 서울부산지사가 있는 제주에 이직. 바닷가의 습한 환경에 아토피가 도졌다.
- 판교의 회사로 이직 후 1시간 30분 출퇴근. 방임의 극치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버려진 팀에 들어갔다.
- 11월. 또다시 이직. 일 다운 일을 하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3개월간 미친놈처럼 일만 했다. “나는 여기서 더 있으면 안 돼. 벗어나야 해. 뛰어 올라야 해.”
- 3개월만에 회사가 인수되며 프로젝트 드랍, 퇴사
- 세상은 나의 ‘열심히’와 상관없이 돌아갔다. 갑작스레 회사 인수소식과 프로젝트 드랍, 팀이 해체되었다. 나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 해도 너무한다 싶은 시간들. 또다시 반 년 넘도록 수백군데의 원서 지원과 면접, 입사, 탈락이 공존했다.
- 다시 동생이 나를 구제하러 왔다. 더는 이렇게 살지 말자… 그렇게 단 한 번이라도 좋아하는 일을 해보라는 말에 공간운영을 위해 준비가 시작되었다.
- 공유서재 언리밋북스 운영.
- 부산대학교 앞에 계약 후 2개월간의 준비 끝에 오픈했다. 2주 만에 내리는 비와 누수. 나는 할말을 잃었다.
- 곡절 끝에 해운대 백사장 앞으로 이전. 인스타 매거진, 울산방송, 뮤직비디오 촬영 등 여러 호재가 이어졌다.
- 매장 정리.
- 누수 때 돈을 너무 많이 잃었다. 더 튀어오르려면 시간이 필요했는데 계엄까지 겹치며 어렵기만 했다.
- 사촌형 사망 후 무연고처리되었다. 현실의 지독함을 보던 날들.
- 근 10년 만에 OKC 수술. 재발했다. 재발률이 30%라고 했다.
-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예전 3개월 일했던 이의 회사에서 일했다.
- 다시 야인이 되었다.
- 경영 문제, AI 도입 등으로 조직을 만들고 싶지 않던 대표에 의해 단기간에 해고처리 되었다. 행정 진정을 넣고 승소했다.
- 미뤄두었던 발바닥, 발목 치료를 위해 병원을 오가고 있다. S
- 난 이제 뭘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