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현실을 이끌어야 한다

“Such widespread phenomena as depression, aggression, and addiction are not understandable unless we recognize the existential vacuum underlying them. Ever more people today have the means to live, but no meaning to live for.” - Viktor Frankl <Man’s Search of Meaning>

“우울증, 공격성, 중독과 같은 이처럼 널리 퍼진 현상들은 그 밑에 깔린 실존적 공허를 인식하지 않으면 이해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살아갈 의미는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언젠가 이 글을 읽었다. 이글을 인용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현명한 삶의 중심 원칙 중 하나는 이상주의가 실용주의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현실을 이끌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청구서, 건강 문제, 가족의 요구와 같은 삶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어야 하지만, 이상은 항상 북극성처럼 있어야 합니다. 그 북극성이 삶의 방향과 분위기를 결정하니까요.” 그것을 읽으며 나의 이상과 꿈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평생 물었을 것이다. 나의 이상은 무엇인지. 나의 북극성은 어디에 있는지를.

사실 글을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관찰했고 그것이 마음에 남았는지 아닌지, 내가 바라보는 현실의 모양과 색깔은 어떠한지, 인간들의 모습과 우리의 역사와 우리가 가진 것, 그리고 잃어버린 것들을 알아내기 위하여…

그것은 글을 쓰지 않는 한 명료한 생각과 가치관을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알고 있지 하며 뭉뚱그리고 넘어가는 것과 명료하게 글로 표현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를 만드는 것이기도 해서다. 그냥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 보고 들은 걸 생각하는 것, 그걸 말하는 것과 글로 남기는 것의 각각에는 뛰어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생각의 줄기는 수없이 새겨진 글들 사이에서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는 거니까.

그러다 보면 내가 바라는 나의 이상, 나의 북극성도 조금은 선명해지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나의 현실은 척박했다. 척박함을 이기려면 아름다운 이상이 필요했지만, 생각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수많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나는 빛을 따라가며 살고 싶기에, 내 삶의 방향을 바로 잡고 싶기에…

과거는 진실이 아니다

과거는 진실이 아니다. 현재가 물러난 모든 과거는 현재의 자신이 재해석한 또 다른 현실이다. 그 현실은 (스스로는 객관적 진실이라 믿지만) 과거의 영광과 부끄러움이 재조직되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과 망각된 것은 탈락되고, 드러내고 싶은 것과 현재의 해석은 덧붙여져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다. 우리는 모두 과거를 명료하게 기억하고 있고, 가감 없이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단 한 번도 진실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어느 과학자의 말대로 우리는 시간을 정의할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인지의 한계와 무한한 상상력, 망각이란 요술로 과거는 끊임없이 재조직되고 재편집되어 드러난다.

옛 영광을 떠올리며 흐뭇해하는 중년 남성의 추억도, 전생애를 돌아보며 자서전을 써내려가는 죽음을 앞둔 노인의 더듬거림도 약간의 사실과 약간의 상상, 탈락된 부끄럼과 덧붙여진 영광이 뒤섞여서 만들어낸 하나의 이야기에 가깝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존재로 자신의 과거까지 다양한 갈래의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

과거는 이야기로 보면 흥미로운 문학이 되고, 다큐멘터리로 보면 한없이 따분한 거짓부렁이 된다.

관심과 신뢰를 얻으세요

Earn attention and trust. Spend time and money on that, and the rest will take care of itself. - Seth Godin 관심과 신뢰를 얻으십시오. 그것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출처

세스 고딘은 말했다. 어떤 자산을 얻을 것인가? 얻는 목적은 무엇인가? 누가 위험을 감수하고 이익을 얻는가? 그 질문은 간단하면서도 무겁다. 공간(메인 스트리트)을 통해 쉬운 관심을 얻는 대신 고정비와 유지비 등 리스크를 떠안는 일쉽게 관심을 얻기는 어렵지만 관계망(구독자, 팬)을 통해 경험을 선사하여 관심과 신뢰를 축적하는 일 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무엇을 하고자 하며 왜 하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 이유다. 방향이 없으면 늘 휘청일 수밖에 없다.

관심과 신뢰를 얻는 일은 꾸준하고 오랫동안 묵묵하게 걸어가는 인생길의 동료를 얻는 일이다. 자기 개성을 잃지 않고, 인간다움을 지키고,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과 익숙함, 그리고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매력을 꾸준하게 표출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이게 어떻게 비춰질까를 의식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을 꾸준하게 해나가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한다. 마케터인 세스 고딘은 비즈니스와 마케팅에 대해 말한 것이겠지만, 나라는 사람 그 자체는 시장의 상품과는 달라서 조금 더 스스로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오래전에 관심과 신뢰를 잃었다. 십수 년간 블로그를 했고 글을 썼지만, 늘 패배에 머물렀으므로 지켜보던 사람들은 지쳐서 하나둘씩 떠났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나를 붙들고 여전히 분투중이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사람들은 고난을 이겨내고, 자기만의 서사를 쌓고, 자기 개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사람에 매력을 느끼지, 늘 고단한 사람에게는 싫증을 느낄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나를 지킨다. 조금 더 건강하고 맑은 정신을 소유하기 위해서. 세스 고딘의 말대로 탄탄한 사회 관계망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 전에 건강한 몸과 정신이 먼저이니까. 조금이나마 스스로를 건져내야 한 개인으로도, 비즈니스맨으로도, 콘텐츠 제작자로서도 중요한 지점에 도달할 출발점에 설 수 있을 테니까.

인생은 괴로움의 연속이다라는 생각

Ⅰ 문제의 시작

어느 날 인간은 하나의 질문과 조우한다. “인생은 괴로움의 연속이다.” 한 번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하면, 주기적으로 그것은 눈앞에 등장한다. 어떤 때는 무의미의 모습으로, 때로는 고통의 형상으로, 가끔은 슬픔으로. 아지랑이처럼 피어난 질문은 심장에 박힌 대못처럼 죽기 전까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 지옥의 형벌처럼 따라다닌다. 청춘의 시기에는 알 수 없다. 인생 도처에 그토록 괴로움이 만연한지를, 또 기쁘고 행복한 순간은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기적 같은 순간이라는 것을.

현실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철장에 놓인 감옥이다. 타고난 운명은 바꿀 수 없고,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괴로움과 무의미의 공허함에 시달릴 뿐이다. 어느 날 문득 든 ‘인생은 무의미하다’라는 생각은 다리를 묶는 질곡과 손목에 묶인 수갑 등 전신을 휘감는 오라가 되어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어떤 질병의 발현, 헌신을 다했던 직장에서의 실직, 가족의 질병이나 사고, 폐업 등에서 시작된 슬픔, 모든 걸 바쳐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 끝내 꿈을 실현시킬 수 없다라는 자각에서 오는 허기가 포함된다. 이런 생각은 대체로 교통사고 같은 급작스럽지만 우발적인 사고에 의해 생성되며, 그때 비로소 인간은 철학을 하기 시작한다. ‘왜 나한테만’ 라는 질문을 묻기 시작하는 것이다.

Ⅱ 문제의 지속

인생은 롤러코스터 같아서 인생살이에서 문제는 모습만 바뀌어가며 등장하기 마련이다. 언젠가는 이별에 힘겨워하고, 언제는 가족이 겪는 고통 때문에, 또 다른 때에는 갑자기 발병한 병에, 느닷없던 사고에, 믿음의 배신에, 실직과 실패에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것이다. 물론 인생의 초기에는 인생의 밝은 측면을 굳건히 믿고 있었을 수 있고, 해낼 수 있고 바꿔낼 수 있다고 믿지만, 인생에는 도저히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 혼자서는 아무래도 안 되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굳건했던 멘탈에 조금씩 금이 가고, 건강했던 몸이 낡아가고, 버티거내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사실을 직면하면서 인간은 약해진다. 인간은 몸만 늙지 않는다. 정신도 낡고 헤질 수 있다.

Ⅲ 인내의 극한

점점 인내하기 힘들어진다.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났지? 나는 왜 이런 일을 당해야만 했지?와 같은 생각은 인내심을 갉아먹는 좀과 같다. 실직해서 막막하고, 꿈을 못 이뤄서 허망하고, 헤어져서 슬프고, 사고나서 힘들고, 믿던 이들에게 배신당해 괴롭고… 그런 일들이야 수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지만, 진정한 문제는 그런 일들은 끝없이 이어져 오는 데 반해 그것을 견디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변화한 삶의 조건들을 새로운 기본값으로 생각하며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데 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아토피가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최중증의 아토피였고 면역질환들로 평생을 고통받았다. 눈 수술을 하고 약이 병을 부르고 병이 약을 부르는 굴레 속에서 청춘을 허비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그렇게 시작된 온갖 트라우마들로 늘 괴로웠다. 내가 당면한 현실 조건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병마를 이겨낼 수 없고, 아버지에게서 벗어날 수도 없는 그 절망의 늪은 어릴 때 나를 괴롭히던 정신의 병이었다. 그럼에도 30대가 되면 나아질 거야, 신약이 나오면 좋아질 거야, 40대가 되면… 이런 생각을 끝없이 했다. 미래에는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 그 생각이 나를 살게 했다. 그러나 고통은 모습을 바꿔서 나를 찾아왔고, 이와 비슷한 일은 끝 간 데 없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인생의 대부분은 고통일 수밖에 없고, 행복하고 즐겁게 만드는 일은 아주 드물게 우리를 찾아오는 기적 같은 순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행복한 순간이 더 소중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Ⅳ 변화의 시작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단 하나 밖에 없다. 인생은 고통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 바로 그것이다. 현실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고 현재의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며, 면역질환을 평생 앓았고 지금도 앓고 있으며, 보통 사람이 할 만한 경험의 대부분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지금 아프다고 느끼는 감각, 그마저도 혼자 견뎌야 한다는 고독, 그럼에도 돈을 벌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은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다만 그 생각, 지금 내가 이런 현실에 처해 있고 앞으로도 달라지기 어렵다는 그 생각만은 바꿀 수 있다. 아주 뻔하지만 그래서 진실인 말은 생각을 그곳에서 꺼내오는 일인 것이다.

Ⅳ 가치관의 습관화

모든 건 변화한다. 달라진다. 태어나면 죽고, 죽은 자리엔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변화할 수 있다. 현실은 바꿀 수 없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생각은 바꿀 수 있다. 그 방법은 연습이다. 한 번에 모든 걸 바꿀 수는 없다.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가치관을 바꾸고,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를 바꾼다. 습관만이 지독한 현실에서 인간을 무너뜨리지 않는 굳건한 지지대가 된다.

생각과 감정은 쉽게 변한다. 자고 나면 달라지고, 다른 행동을 하면 달라진다.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고, 슬픔에 빠지는 순간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것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 잠깐의 전환으로 심각한 부정적 사고와 감정에서 멘탈을 구출하는 것이다. 부정적 감정에 자주 빠져든다면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 청소를 하거나 산책, 샤워, 요리, 통화 등을 해보자. 현실의 괴로운 문제들로 짓눌려 있던 멘탈이 잠시 환기의 시간을 가지게 되면 많은 것이 달리 보인다. 그래서 힘들 때 일을 더 열심히 해서 잊으려고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물론 문제를 외면만 해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하지만 멘탈의 균형을 되찾고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과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쏠려 있을 때 그 감정들을 무시하고 문제에 달려드는 것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너무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있거나 기쁜 나머지 들떠 있을 때는 냉정을 찾기 어렵고 제대로 문제를 파악하거나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다소간 부정적 감정들을 해소하고 기분을 전환하고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린 후에 문제를 바라볼 때에는 자신이 세상을 보는 렌즈를 깨끗이 씻은 후에 보는 것이기 때문에 달라진다. 모든 건 어떤 렌즈로 세상과 나를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고, 내 감정과 생각에 휘둘리느냐 나 자신이 컨트롤 하느냐의 싸움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바꿀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 나의 경우는 내 몸이다. 아토피로 시작된 여러 질환에 몇십 년 짓눌리며 지내다보니, 그리고 해결할 수 없는 다른 문제들을 숱하게 만들어낸 것에서 도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로는 너무 아파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고, 그 무엇도 지금 내 현실을 바꿀 수 없음에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 다만 그 생각에 오래 붙잡히지 않으려 하는 것, 그런 생각이 습관이 되고 가치관이 되도록 두지 않는 것만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생각한다.

좋은 유전자를 받고 태어나서, 좋은 환경에서 저들은 괜찮은 거고, 나는 불운한 운명을 타고나서 이런 사고를 당하고 괴로움을 겪는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그것이 오래되면 생각이 굳어져 습관이 되고 가치관이 된다. 인간을 믿을 수 없고, 패배주의적 사고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자조적인 마인드는 불만과 불안을 키우고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낸다. 자신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생각이 자신을 끝없이 망가뜨리고 있는 것으로 마치 독약을 스스로 들이키는 것과 같다.

지독한 현실이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생각마저 인간을 무너뜨리게 둘 수는 없지 않을까.

나를 위한 시간

“단 90초도 저를 위해 요리를 한 적이 없습니다.”

  • 최강록 요리사, <흑백 요리사 2>의 결승전에서.

그 말이 이후 “그런 저에게 이런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라는 말이 이어진다.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하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걸 맞춰주고, 누군가의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할 줄은 알면서도 스스로를 위한 위로는 뒷전에 둔 채 살아가던 나에게도 작은 울림을 주던 회차였다. 전국에 계시는 모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찬가와 같은 말들.

돌아보면 일과 생활 어디에서도 진정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 없었다. 일은 늘 남의 일을 해주는 것에 그쳤고, 좋은 관계를 맺어야 일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충을 듣고, 근심과 슬픔을 나누는 것도 모두 타인을 위한 일이었다. 그러다 연말과 연초, <흑백 요리사2>를 보며 나는 무엇에 목숨을 걸고 있는가, 목숨을 내어주어도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위한 시간은 정말 있었나 하는 질문들이 계속 입속을 맴돌았다. 아프고 괴롭고 힘든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나 자신의 진짜 마음을 들여다 보고 진짜 나로 거듭나기 위한 시간을 보냈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아픈 것을 해결하기 위해, 일을 조금 더 잘 하기 위해,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너무 많은 ‘척’을 하며 살았다. 최강록이 말했던 바로 그 ‘척하는 인생’ 이 내게도 있었다. 늦었다면 늦었지만, 이제라도 조금 외피는 걷어내고 순수한 열정을 쏟아붓던 요리사들, 셰프들처럼 나도 조금 더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려고 노력해보자 했던 시간이다.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는 것

어느 날 문득

어느 날, 당신은 아무도 진짜로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그리고 당신이 원했던 건 뭐든지 할 수 있었단 걸 알게 될 거야. one day, you will realize that no one was really watching, and you could have done whatever you wanted

멋부리려 하지마

멋 부리려 하지 마라. 네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괴짜처럼 집착하라. 열정은 무관심보다 너를 더 먼 곳으로 데려다 줄 테니까. stop trying to be cool. be nerdy and obsessive about the things you love. enthusiasm will get you farther than indifference.

세상에 태어난 지 오래지 않은 시절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부모님이 세상의 전부가 되지만, 오랜 세월을 살다 보면 다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나 또한 한때 이런저런 책을 읽고, 사회에서 여러 일을 겪으며 조금은 세상은 안다고 생각했고 남들은 쉽게 흘려보내는 걸 잘 포착한다고 여겼다. 착각은 내게서 많은 걸 앗아갔다. 한국 사회의 문화 속에서 한 발자국도 못 벗어나면서.

당신은 누구인가요

Who are you?…

한 남자가 있다.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어느날 조금 더 독립적인 삶을 살기로 마음 먹은 그는 글쓰기를 통해 자유와 독립을 찾는다. 어느 날, 길을 걷다 자전거와 부딪치는 사고를 당하게 되고, 거기서 알게 된 베아트리체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준다. 그 글에 베아트리체는 매료되었고 그녀가 누군가에게 글을 보여주고, 그가 또 다른 이에게, 또 다른 이에게 보여주다가 많은 출판사를 보유한 사람에게까지 넘겨지고 또 감동을 주어서 출간을 하기에 이른다. 초판은 다 나가고 재판을 찍으며 남자는 유명세를 탄다. 일상은 별반 다를 것 없지만 (길을 걷는다 해도 누군가가 알아보는 이가 없다) 그는 왠지 자신이 순식간에 빌딩의 꼭대기에 올라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 괴리감.  한 여자가 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동안 정든 가족이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하며 새로운 삶을 꿈꾼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는 그녀는 극장에 가게 되는데, 이미 연극의 스토리를 줄줄 꿰고 있던 그녀는 주인공이 마지막 리허설에 나타나지 않은 틈에 서게 된 무대에서 찬사를 받는다. 그리곤 아침에는 연극학교에 가고 오후에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여자는 남자의 집에 배달을 간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대화를 하게 되고, 여자는 다음 주에 있을 첫 공연에 들떠 있고 남자는 한순간의 운으로 유명해졌지만 자신에게 재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있다. 여자는 말한다. “나는 당신을 알고 있어요. 당신이 쓴 많은 책을 읽었어요. 당신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당신의 많은 책은 오랫동안 내 유일한 안식처였어요. 내가 어려웠던 시기에 아주 훌륭했던 친구였죠. 때로는 운을 좀 도와야 해요. 내 연극의 무대는 내 것이지만 영감은 당신의 책에서 받은 거예요.”  남자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어떤 고마움을 느낀다. 막연한. 여자는 홀연히 떠나고, 남자는 번뜩이는 무언가를 느끼며 다음 연극무대에서 다시 보자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녀가 전해준 택배상자를 열어보는데. 안은 텅 비어 있다.  “이봐요. 택배 상자에 아무것도 없어요!” “확실해요? 다시 한 번 보세요. 이번에는 운이 좋을 수도 있어요!” 상자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자신의 삶은 자신이 만들어간다. 삶은 비어있는 상자 같은 것, 그것에 무엇을 채울지는 본인에게 달렸다. 그것에 운을 담을 수도, 자신이 못미더워하는 자기 재능을 담을 수도 있다. 우선은 담고, 믿는 것이다.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고 그것이 괜찮을 수도 있다는. 상자를 믿고 안 믿고는 자신에게 달렸다. 그 안에 온갖 선물이 담겨 있다고 믿는 자와 아무것도 없다고 불평하는 자의 삶은 180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운이나 타인의 평가 같은 것은 텅 빈 상자와 같은 것이니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삶에서 우연히 주어진 것을 감사하라는 의미도 있다. 자신에게 우연히 찾아온 기회로 성공한 남자, 그는 그것이 단지 운일 뿐이며 자신의 재능 없음이 만천하에 드러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러나 그녀는 때로는 운을 스스로 도와야 한다는 말을 한다. 자신을 찾아온 운을 자신이 이용할 줄도 알고 그것에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지나친 걱정과 근심, 불안은 이미 찾아온 운마저 달아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은 아닐까. 남자는 자신의 책은 많이 팔려도 거리에 나가면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모르겠다고 실토했지만, 여자는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 자신처럼 힘들 때 좋은 친구가 되고 영감을 주고 기쁨을 주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그러니 자신이 하는 일을 빈 상자를 만드는 일로 치부하지 말고 그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걸 말하고 있다.

눈에 띈 댓글 하나.

  • When the man finds out and tells her the box is empty, she asks him to look again. The second time he looks, he understands that it was not a thing that she delivered. What she delivered was hope, love, gratitude and a sense of meaning to his life. What moved the man was the realization that his work impacted, helped, befriended and influenced a life. That realization moved him to work again on his craft with heart and passion.
  • (남자가 상자가 비어 있다고 말하자 그녀는 다시 한 번 봐달라고 부탁합니다. 두 번째로 다시 본 남자는 여자가 전달한 것이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녀가 전달한 것은 희망, 사랑, 감사, 그리고 그의 삶에 대한 의미였습니다. 그가 감동한 것은 자신의 일이 한 삶에 영향을 주고, 도움을 주고, 친구가 되고,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그 깨달음은 그가 다시 진심과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매진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about me

설명

이곳은 제 모든 것이 담길 가상의 집입니다. 존재하지만 결코 누구나 찾을 수 없고 찾지도 않을 집…

Last updated: 2026-01-25

TIMELINE

  • 1984년 (1) : 부산 초량에서 출생. 아토피.
  • 1999년 (15) : 극심해진 아토피. 시작된 스테로이드 지옥.
  • 2002년 (19) : 새집증후군, 2차감염 발발. 고3 수업의 2/3를 나가지 못했고 수능조차 치르지 못했다. 지독한 요양의 시작. 혼자 못 걷던 시기. 매일 피부가 찢어지고 진물이 났다.
  • 2003년 (20) : 좌안 망막박리증으로 실명.
  • 2004년 (21) : 우안 백내장 수술. 한의원 등에서 before, after 사진을 찍을 정도로 염증이 극심했던 시기. 채식과 온갖 민간요법이 동원되었다.
  • 2009년 (26) : C형 간염 등 면역체계의 이상. 두문불출하며 암자 등에서 요양.
  • 2011년 (28) : 좌측 광대뼈 안의 낭종 제거술 (OKC). 2025년 재발로 재수술.
  • 2012년 (29) : 심한 아토피로 엘리펀트맨 같은 외모로 사람들이 비명지르고 도망가고, 길에서 홍해 갈리듯 물러서던 시기가 끝났다. 사이클로스포린이라는 약 때문에 잠시 맞이한 여유의 시기. 처음으로 성당에 갔고, 청년회장을 하며 여러 모임에 참여하고 봉사활동을 다녔다.
  • 2014년 (31) : 부산장애인직업능력개발원 입소. 온갖 자격증 취득. 100군데 이상 지원.
  • 2015년 (32) : 서울 IT 스타트업에 입사. 처음으로 남들 같은 평범한 인생을 사는 기분이었다.
  • 2016년 (33) : 우안의 유리체절제술. 실명 위험. 하나 남은 눈의 위험에 퇴사했고, 위험한 수술이라는 병원들의 우려에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해서 겨우 아산병원의 윤영희 교수에게서 수술을 받고 회복했다. 감염을 막기 위한 스테로이드에 극심한 리바운드로 고생한 나날. 이후 제주로 내려가서 아토피 완치에 전념하고자 제주 한라병원 노건웅 교수에게서 감마인터페론 주사와 면역치료를 받았다. 고난의 시기는 끝나지 않았다.
  • 2017년 (34) : 제주 생활에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부산행. 그리고 이어진 취업 전쟁…
  • 2018년 (35) : 아토피 신약 치료제인 듀피젠트(듀필루맙) 임상시험을 처음 시작했다.
  • 2019년 (36) : 우여곡절 끝에 롯데쇼핑 이커머스에 입사. 일중독의 시작이었다.
  • 2020년 (37) : 인문 계간지에 글을 기고.
  • 2022년 (39) : 성장에 대한 욕구, 일 안 하는 상사와 일감이 몰리기만 하는 현실과 미래 불투명을 이유로 이직 준비.
  • 2023년 (40) : 22년 말에 입사한 IT 스타트업의 인수합병과 소속 사업부 해체, 프로젝트 드롭으로 야인이 되었다.
  • 2024년 (41) : 동생과 함께 한 공유서재 몰경계 창업. 누수.. 등 수많은 문제가 산재했지만, 지방방송, 인스타 매거진 등에 소개되며 조금씩 알려졌다.
  • 2025년 (42) : 1년 만에 공간을 다른 이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누수 등으로 인한 손해가 커서 버틸 힘이 없었다. 다시 IT 업계로 복직.
  • 2026년 (43) : Continued…

오랜 시간 고통과 열병을 견디며 살았습니다. 블로그에 지난 아픔을 한땀 한땀 도자기에 무늬 새기듯 써내려간 시기도 있었습니다. 아픔을 해부하면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해결하려 들면 언젠가 해답이 보일 줄 믿었습니다. 자연스레 그런 일을 했고 그리 되리라 믿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니체의 말이 맞았음을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심연을 계속 들여다 보면 심연도 너를 들여다 본다는 말. 저는 천천히 악에 잠식되고 있었습니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은 밝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조금씩 세상의 또 다른 면을 들여다 보고, 따스한 햇살이 주는 안온함도 느껴보고 싶어서 다시 펜을 잡고, 카메라를 들고, 세상 속으로 조금씩 들어가고 있습니다. 무거운 현실은 언제나 바뀌지 않고 괴롭히겠지만, 세상의 다양한 색을 골고루 맛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어둠이 있다면 빛도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이 공간의 존재 이유는 곧 저의 존재 이유입니다. 글과 사진은 모두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드러낼 겁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과 저의 단면이 고스란히 쌓이는 곳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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