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리터의 눈물, 2005 - 사랑하기, 또 사랑하기

1리터의 눈물

<1리터의 눈물, 2005>을 보았다. 엄청 슬픈 이야기다 정도로만 기억하던 일본 드라마였는데 어쩌다 보게 되었다. 11부작은 너무 길다 하면서도. 몸이 제 기능을 하지 않을 때만큼 ‘이야기’에 빠져들기 좋은 때도 없는 것 같다. 지난번 입원하면서 <종이의 집> 1, 2를 보았고 이번에도 11부장 드라마를 다 보았으니. 하긴 움직여서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책과 영화로 내 품에 세상을 끌어들이겠다 하는 마인드도 좋은 것 같다. (그래도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있다면 좋겠다) <1리터의 눈물, 2005>은 키토 아야(1962~1988)가 15세(중3) 시절, 척수소뇌변성증이라는 불치병에 걸렸음을 알게 된 시점부터 양호학교 졸업 후 입원실에서 스스로 펜을 들 수 없을 때(20세)까지 공책에 쓴 일기를 바탕으로 출간된 책(1リットルの涙)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이다. 척수소뇌변성증은 소뇌의 퇴행성 변화로 인해 균형감각 이상, 보행장애, 언어 장애 등 각종 운동신경이 서서히 마비되는 희귀병으로 2026년 현재까지 치료법이 없는 불치병이다. 아야는 15세에 발병하여 10여 년간 투병하다 명을 달리했다. 드라마는 발병부터 죽음 이후의 모습까지 담겼다.

1리터의 눈물

1화 에필로그를 볼 때까지 실화인 줄 몰랐다. 그런데 매화 에필로그에 그녀가 쓴 일기와 그녀의 생존 행복하고 활달했던 모습들이 사진으로 보이는데, 여러모로 슬펐다. 치료법은 전무하고, 재활과 약물로 조금이라도 늦춰보려 애를 쓰지만 빠르게 악화되는 그녀의 건강과 화목했던 네 가족에 스며드는 슬픔과 눈물들, 학교 친구들의 도움이 시간이 지날수록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커져가는 절망 같은 현실들, 농구를 좋아했던 소녀가 공 던질 수 없게 되고, 공부를 위해 펜 드는 일이 힘겨워지고, 그 나이대의 소녀라면 누구나 꿈꿔볼 수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사랑과 결혼을 상상하는 일조차 포기해야만 하는 환경이 그랬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 모두가 상실되어가는데, 그게 너무나 슬펐다. 왜냐하면 학창 시절의 내가 그랬으니까. 학교는 가지도 못 한 채 혼자 걷지도 못하고, 팔을 굽히거나 펴지 못하고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는 상황들, 눈수술로 앞을 보지 못해 병실에서 엄마가 수저로 밥을 겨우 먹여주던 날들, 온갖 수술대에 올랐던 시간들이 내게도 있었다. 그때는 절망할 겨를이 없었다. 아야처럼 스스로 이겨내고 슬픔을 주변에 퍼트리지 않고 싶어서 악을 썼으니까…

1리터의 눈물

나는 상상하게 된다. 점차 걷는 모습이 이상해지고 이상해진 외양으로 주변 시선이 얄궂게 변하고, 공 던질 힘조차 없어져서 운동부원에서도 빠지고, 휠체어로 겨우 움직이지만 늘 주변의 도움이 없으면 계단 하나 못 오르는 상실의 과정을. 펜을 쥐는 게 힘들고, 밥알을 넘기는 게 고통이 되는 시간들을. 자신은 주변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피해만 주는 존재라는 자각은 자기 효능감을 극도로 떨어트리는지를, 미래의 꿈을 집어삼키다 못해 화장실 오가는 것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존엄성까지 말살당하는 절망의 과정들을. 나라면 어땠을까? 그녀처럼 웃을 수 있었을까? 실은 그때 비슷한 환경에 있던 나는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다. 말 그대로 1리터의 눈물을.

1리터의 눈물

나는 너무 오래 살았다. 언젠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너무 오랜 기간 딱 죽지 않을 만큼 힘들어서 나와 주변 모두 실의에 빠지게 만들었다. 한 번쯤은 다 함께 웃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야를 위해 헌신하는 가족과 해답 없는 질병에도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마음을 다하는 담당의, 끝까지 그녀와 함께 하는 학급 친구들, 그녀 곁에서 그녀가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아소까지. 지금에 와서 다시 보이는 건 현실의 무게와 절망, 희망의 부재보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그녀의 인생에서 늘 함께 하며 사랑과 온기를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들이었다. 그렇게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너무 오래 살았다기 보다 너무 홀로 오래 견뎠다가 맞는 듯싶다.

1리터의 눈물

그녀는 형을 사고로 잃고 여전한 상처 속에서 지내는 아소에게 다시 삶의 의미를 찾게 하고, 친구들에게 더 피해를 주기 싫은 마음에 양호학교로 가서 열심히 재활을 하며, 의사조차 “환자가 포기하지 않는데 어떻게 의사가 포기를 하느냐"와 같은 의지를 전파한다. 실제 아야의 일기와 친구들과 주고받던 편지에서도 강한 의지와 주체적으로 살려고 하는 모습들이 많이 담겨 있다고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더욱더 혼자서만 힘들어했던 나날이 떠올라 슬펐다. 드라마라서 그렇게 그려진 거겠지만, 그녀 주변에는 그녀를 위해 헌신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때 남자 주인공인 아소의 아버지의 말이 현실은 낭만이 아님을 깨쳐 주었는데, “투병 기간이 오래되면 주변 모두가 지치게 마련이다, 너는 아야가 더 힘들어지면 도망가지 않을 수 있느냐"라는 말이 특히 그랬다. 돌아보면 나 또한 19-25세까지 정말 주변 모든 사람의 처절한 노력이 있었다. 그게 끝나지 않고 10년 20년 가까이 더 흘러버려서 문제가 되었지만…

1리터의 눈물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절망하던 소녀는 엄마를 붙잡고 우짖는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러나 엄마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네가 왜 아무것도 할 수 없느냐고, 너는 글을 쓸 수 있지 않느냐고. 무뚝뚝한 아소 또한 알게 모르게 그녀의 곁에서 ‘너는 절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걸 상기시켜주었다. 결국은 이 드라마에서 불치병과 절망이라는 테마보다 숱한 인간관계 속에서 이어지는 다정함과 친절함, 의지와 연대, 치유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관계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조금 더 나를 풀어놓고 울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인간관계가 너무나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전쟁하듯 하루하루 겨우 버티고 있는 삶을 잠시나마 떨쳐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모든 날들은 다정함과 친절함이 너무도 그리운 나날들이었다… 그래, 이건 리뷰가 아니라 내 지난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소회이다.. 보잘것없는 나를 지켜봐 주고 지지해 주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병은 불치병이야. 치료법이 없대. 언젠가 걷는 것도, 서는 것도, 말하는 것도 못하게 된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지난 1년 동안 당연하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할 수 없게 되었어. 꿈속에서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걷거나 농구를 하면서 마음껏 뛰는 일이 가능했는데 눈을 뜨면 더 이상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돌아와. 매일매일 달라졌어. 넘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도시락을 빨리 먹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있을 수 있는지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일을 하고… 그런 식으로 상상하던 미래가 사라져 버렸어. 살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고 희미한 희망의 빛도 보이지 않았어. 병에 걸린 탓에 내 인생은 무너졌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어. 하지만, 그래도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었어. 아무리 울어도 병에서 도망칠 수 없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도 시간은 돌릴 수 없어. 그러면 스스로 지금의 나를 좋아할 수밖에 없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어. 왜냐하면 이런 상황이 되고, 많은 걸 처음으로 느끼게 됐거든.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가족은 참 감사한 존재라는 것, 아무렇지도 않게 도와준 친구의 손이 매우 따뜻했다는 것, 건강하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한 일이라는 것, 병에 걸려서 잃은 것만 있는 건 아니었어. 이런 몸이 된 내가 바로 나라고, 장애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내가 지금의 나라고, 가슴을 펴고 당당히 살자고 생각했어. 그래서 양호 학교로 가는 건 내가 정한 거야. 너희와 살아가는 장소는 달라지겠지만 이제부터는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서 희망을 발견해 가려고 해. 이렇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나는 적어도 _1리터의 눈물_을 흘렸어. 그러니까 이제 나는 이 학교를 떠나더라도 뭔가가 끝나버렸다고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모두 지금까지 친절하게 대해줘서 정말 고마워.”

  • 8화 고등학교를 떠나며 친구들에게 건네는 작별 인사

1리터의 눈물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것은 기억해도 무엇을 봤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것은 기억해도 무엇을 봤는지는 기억하지 못해요.”

우연히 보게 되었던 유튜브에서 Megan Tan이 한 말. 영화 제작자이자 크리에이터로서 사물(Things)이 아닌 느낌(Feel)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 방법들을 활용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교토(Kyoto)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본은 갈 수 없지만 다다미 문은 만들 수 있다, 조명을 조절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소품을 활용할 수 있다와 같은 얘기들을 하며 위의 말을 했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 확실히 나는 무얼 봤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고 영상의 분위기와 느낌만 잔상에 남아 있다. 그가 옳았다.

‘중요하지 않은 걸 잘 하는 것’ 보다 ‘중요한 걸 그럭저럭이라도 하는 것’ 이 더 필요하다. 아무거나 잘 해내는 것보다는 정말 필요로 하고 중요한 일을 그럭저럭이라도 하는 것. 말처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세스 고딘은 [링크 끊김: 관심과 신뢰를 얻으세요] 라고 했다. 어떤 비즈니스를 하느냐에 따라 중요한 것은 다르다라고. 영상 제작 또한 ‘사람들이 무엇을 보게 될지’에만 신경쓰면 정작 중요한 어떤 ‘느낌을 주려 하는지’는 뒷전이 된다. 주객이 전도되는 건 마냥 쉬운 일이다.

오래전 방송 실험을 본 적 있다. 한 카페에서 요란한 옷을 입고 한참이나 실험 대상자 옆에 있었던 사람. 한참 후에 대상자에게 옆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입은 옷이나 색깔 등이 기억나느냐고 물었고, 대부분의 사람이 기억하지 못했다. 결론은 ‘당신 생각보다 사람들은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였는데, 사실은 그런 명명백백한 사실보다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쏟지 않을 판단력 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했다. 쓸데 없는 일에 들이는 에너지를 줄여서 보다 중요한 일에 매진하는 것. 그건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일보다 인생 전체를 잘 살아가는 근본적 힘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는 시간이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Who are you?…

한 남자가 있다.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어느날 조금 더 독립적인 삶을 살기로 마음 먹은 그는 글쓰기를 통해 자유와 독립을 찾는다. 어느 날, 길을 걷다 자전거와 부딪치는 사고를 당하게 되고, 거기서 알게 된 베아트리체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준다. 그 글에 베아트리체는 매료되었고 그녀가 누군가에게 글을 보여주고, 그가 또 다른 이에게, 또 다른 이에게 보여주다가 많은 출판사를 보유한 사람에게까지 넘겨지고 또 감동을 주어서 출간을 하기에 이른다. 초판은 다 나가고 재판을 찍으며 남자는 유명세를 탄다. 일상은 별반 다를 것 없지만 (길을 걷는다 해도 누군가가 알아보는 이가 없다) 그는 왠지 자신이 순식간에 빌딩의 꼭대기에 올라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 괴리감.  한 여자가 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동안 정든 가족이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하며 새로운 삶을 꿈꾼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는 그녀는 극장에 가게 되는데, 이미 연극의 스토리를 줄줄 꿰고 있던 그녀는 주인공이 마지막 리허설에 나타나지 않은 틈에 서게 된 무대에서 찬사를 받는다. 그리곤 아침에는 연극학교에 가고 오후에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여자는 남자의 집에 배달을 간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대화를 하게 되고, 여자는 다음 주에 있을 첫 공연에 들떠 있고 남자는 한순간의 운으로 유명해졌지만 자신에게 재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있다. 여자는 말한다. “나는 당신을 알고 있어요. 당신이 쓴 많은 책을 읽었어요. 당신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당신의 많은 책은 오랫동안 내 유일한 안식처였어요. 내가 어려웠던 시기에 아주 훌륭했던 친구였죠. 때로는 운을 좀 도와야 해요. 내 연극의 무대는 내 것이지만 영감은 당신의 책에서 받은 거예요.”  남자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어떤 고마움을 느낀다. 막연한. 여자는 홀연히 떠나고, 남자는 번뜩이는 무언가를 느끼며 다음 연극무대에서 다시 보자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녀가 전해준 택배상자를 열어보는데. 안은 텅 비어 있다.  “이봐요. 택배 상자에 아무것도 없어요!” “확실해요? 다시 한 번 보세요. 이번에는 운이 좋을 수도 있어요!” 상자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자신의 삶은 자신이 만들어간다. 삶은 비어있는 상자 같은 것, 그것에 무엇을 채울지는 본인에게 달렸다. 그것에 운을 담을 수도, 자신이 못미더워하는 자기 재능을 담을 수도 있다. 우선은 담고, 믿는 것이다.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고 그것이 괜찮을 수도 있다는. 상자를 믿고 안 믿고는 자신에게 달렸다. 그 안에 온갖 선물이 담겨 있다고 믿는 자와 아무것도 없다고 불평하는 자의 삶은 180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운이나 타인의 평가 같은 것은 텅 빈 상자와 같은 것이니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삶에서 우연히 주어진 것을 감사하라는 의미도 있다. 자신에게 우연히 찾아온 기회로 성공한 남자, 그는 그것이 단지 운일 뿐이며 자신의 재능 없음이 만천하에 드러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러나 그녀는 때로는 운을 스스로 도와야 한다는 말을 한다. 자신을 찾아온 운을 자신이 이용할 줄도 알고 그것에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지나친 걱정과 근심, 불안은 이미 찾아온 운마저 달아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은 아닐까. 남자는 자신의 책은 많이 팔려도 거리에 나가면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모르겠다고 실토했지만, 여자는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 자신처럼 힘들 때 좋은 친구가 되고 영감을 주고 기쁨을 주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그러니 자신이 하는 일을 빈 상자를 만드는 일로 치부하지 말고 그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걸 말하고 있다.

눈에 띈 댓글 하나.

  • When the man finds out and tells her the box is empty, she asks him to look again. The second time he looks, he understands that it was not a thing that she delivered. What she delivered was hope, love, gratitude and a sense of meaning to his life. What moved the man was the realization that his work impacted, helped, befriended and influenced a life. That realization moved him to work again on his craft with heart and passion.
  • (남자가 상자가 비어 있다고 말하자 그녀는 다시 한 번 봐달라고 부탁합니다. 두 번째로 다시 본 남자는 여자가 전달한 것이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녀가 전달한 것은 희망, 사랑, 감사, 그리고 그의 삶에 대한 의미였습니다. 그가 감동한 것은 자신의 일이 한 삶에 영향을 주고, 도움을 주고, 친구가 되고,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그 깨달음은 그가 다시 진심과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매진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