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없는 창업자들

스타트업-바이블

위 이미지는 스트롱벤처스 대표의 블로그에서 본 글(링크)이다.

작은 기업이 J커브를 그리며 성장하는 이유, 망하는 이유는 모두 대표에게 있다. 성공의 이유가 명확하듯 실패의 이유도 명확하다. 운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 자신이 추진하는 비즈니스의 본질을 모른다. (돈만 벌면 돼)
  • 기술 기반이지만 기술에 관심이 없다. (알아서 해줘)
  • 몇 안 되는 사람으로 굴러가지만 사람을 천시한다. (돈주고 시키는 건 당연한 일이지)
  • 자신의 비즈니스를 굴러가게 하는 본질을 공부하려고도, 이해하려고도, 들으려고도,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거 간단한 거잖아)
  • 자기 생각에 100% 확신이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내가 신이다)
  • 남의 생각, 특히 자신보다 아래로 여기는 이들을 존중할 줄 모른다. (네가 뭘 알아?)
  • 자신이 가진 게 무엇인지, 없는 건 무엇인지, 가진 걸로 할 수 있는 한계선은 무엇이며, 당장 할 수 없는 건 무엇인지 모른다. (망치 하나로 산을 깎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곧바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단계별로 쌓아가는 시간의 힘을 무시한다. (출시하면 바로 매출 나와야지, 뭘 기다려?)
  • 사람과 돈 모두 도구로만 보인다. (저들을 이용하면 순식간이지 않겠어?)
  •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 협력 관계에 있는 업체 등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질 줄 모른다. (줬으니 당연히 받아야지)

그런 모든 사고가 자신을 폐업과 폐망의 길로 인도한다. 주변 사람은 알지만 자신은 모른다. 확신이 가는 비즈니스이고, 생각대로 굴러가기만 했다면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는 비즈니스인데 왜 망했지? 그러나 그 생각조차 찰나의 시간 후에 바뀐다. 내가 맞았는데 운이 나빴다라든가 대외조건이 너무 안좋았다라든가 하는. 바보가 자신이 바보인 줄 알면 바보이겠는가. 자신을 몰라서 바보인 것이고, 결국 망하는 창업가는 자신의 기준과 생각대로 하면 성공한다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망한다.

그런 이들이 빨리 가려고만 생각하지 함께 멀리간다고 생각할까? 나도 망하는 여럿 기업의 대표를 봐왔지만 대개 이런 이유들로 망한다. 하지만 본인만 모른다. 본인은 기이한 착각과 망상에 빠져 있다. 단지 시간이 없어서, 인력과 자원이 부족해서 생각대로 구현이 안 되었고, 그래서 이런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고 훗날 말하지만, 그런 이들을 옆에서 봐왔던 사람들은 안다. 이미 망할 조짐은 초기부터 수없이 보여왔다고. 스스로 변하지 않는 한 좋은 기업은 절대 태어나지 않고 성장하지 않는다.

주제별로 생각을 아카이브하기

주제별-노트

살다 보면 늘 생각하게 되는 주제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사람, 장소, 취미, 건강, 계획, 재정. 계속해서 생각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각각에 대해 “생각 정리” 일지를 따로 만들어 보세요. 이 주제에 대해 생각나는 것이 있을 때마다 해당 파일을 열고 오늘 날짜를 적은 다음 글을 쓰기 시작하세요. 각 주제에 대한 생각을 한곳에 모아두는 것이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주제에 대한 제 생각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혹은 어떻게 반복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끔 어떤 주제에 대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럴 땐 파일을 열어서 적어두는데, 나중에 보면 똑같은 생각을 1년 전에도 했었는데 잊고 있었던 경우가 있죠. 당신의 생각을 소중히 여긴다면, 간직하세요. - Derek-Sivers

생각의 끌타래는 자신의 생각이 어떤 경로로 생겨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데렉시버스는 기업가로써 성공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매각했고, 현재는 삶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 뉴질랜드(?)에서 가족과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여러 권의 책도 집필했고 블로그도 운영했는데, 그런 그가 특별할 것 없는 주제를 두고 생각날 때마다 노트를 펴서 기록해보라고 조언한다. 생각의 줄이 시간을 타고 이어지고 또 이어져서, 노트를 펼 때마다 1년 전에 나는 ‘사랑’을 주제로 이렇게 생각했구나, 아 내가 반복적으로 이 생각을 하고 있네 같은 자기 이해의 단초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특정 주제로 메모를 계속해서 남기다보면 책이나 나만의 콘텐츠가 될만한 씨앗을 심고 가꾸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버려야 할 생각은 버리고, 키울 생각은 다양한 갈래로 확장할 수 있는 것. 그건 메모가 주는 가장 큰 힘 중 하나이다.

주는 것 없이 바라기

패배는 ‘적당히’ 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적당히 만들고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쉬면서 적당히 배우는 사람. 모든 것을 적당한 수준에서 끝내고, 주는 것 없이 바라며 노력 없이 성과를 바라는 이중잣대가 있는 사람. 일을 내 것으로 만들지 않고 모르는 분야를 알려고 하는 열의가 없고, 잘 해내고자 하는 열망이 적은, 귀찮음은 타인에게 전가하는 이에게 패배는 디폴트값이다. 노력한 만큼, 일을 내 것으로 장악한 만큼, 귀찮은 것까지 떠안은 만큼, 성공에 목마른 이리떼만큼 사냥에 굶주려 있고, 배우고 익히는 데 나이가 없다고 믿고 배우는 만큼 성공의 문은 조금씩 열리는 법. 인간관계마저 주는 것 없이 바라는 것 또한 날강도라 칭할 텐데 성공과 부의 성취는 오죽할까? 하지만 대부분은 시킬 줄은 알되 스스로 할 줄은 모른다. 그러니 패배는 따놓은 당상일 수밖에.

뇌를 재구성해서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기

뇌는 항상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을 한다.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게 좋을지를 판단하는 기계처럼. 갑작스레 단 것이 먹고 싶다든지 자극적인 영상을 보거나 숏폼을 한없이 보게 만드는 것과 같은 모든 충동은 단순한 쾌락의 추구가 아니라 도파민을 끊임없이 원하는 뇌의 갈망(Craving)이 원인이다. 한 번 도파민의 급증 상태(Dopamine Spike)를 맛본 뇌는 끊임없이 그러한 상태를 원하게 되고 이런 상태는 대체로 1분간 높은 가소성 상태로 만든다. 그때 도파민이 급증하는 갖가지 행동을 반복하면, 보상과 강화가 계속되어 시간이 갈수록 욕구는 강해지고 다시 중독되듯 도파민이 마구 분비될 만한 행동을 찾는 걸신(?) 같은 상태가 되곤 하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뇌가 강렬한 도파민의 자극을 원할 때 딱 1분만 다른 행동을 해보자. 지금 내가 이런 걸 강하게 갈망하고 있다는 상태는 인지하되 그 갈망에서 잠시 물러나 다른 일로 대체해보는 것이다. 단 1분간의 다른 행동으로 인해 뇌는 새로운 연결망들을 만들고 기존의 고자극 도파민 스파이크를 대체한다.

그때 중요한 건 다른 행동을 하며 1분을 참아낸 자신에게 적절한 보상을 선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1) 도파민 자극을 원한다는 상태를 인정하기2) 다른 행동하기 에 이어 3) 그 행동을 한 자신에게 보상하기 라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기 시작하면, 악습관과 숏폼, 고자극에 절어 있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번쯤 시간을 숏폼과 릴스에 빠져 헛되이 보내고 더 높은 자극이 아니면 만족이 되지 않는 자기 자신에게 한심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단지 다른 행동을 하고 보상하는 몇 번의 과정들이 많은 걸 바꿀 수 있다.

이 글은 <레딧의 글> 이 인상깊어 재정리하는 용도로 적어두기 위해 썼다.

관련 논문들

  • Yagishita, S. et al. (2014). A critical time window for dopamine actions on the structural plasticity of dendritic spines. Science, 345(6204), 1616–1620. 
  • Reynolds, J. N. J., Hyland, B. I., & Wickens, J. R. (2001). A cellular mechanism of reward-related learning. Nature, 413, 67–70. 
  • Gerstner, W., Lehmann, M., Liakoni, V., Corneil, D., & Brea, J. (2018). Eligibility traces and plasticity. Neuron, 97(2), 273–289. 
  • Lisman, J., Grace, A. A., & Duzel, E. (2011). A neoHebbian framework for episodic memory; role of dopamine-dependent late LTP. Neuron, 72(5), 703–717. 
  • Sutton, R. S., & Barto, A. G. (2018). Reinforcement Learning: An Introduction (2nd ed.). MIT Press.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쓰지 않는 사람

폴 그레엄(Paul Graham)은 앞으로의 세상은 글을 쓰는 사람글을 쓰지 않는 사람 (Writers and Write-nots)으로 나뉠 것이라고 전망한다. 많은 AI 전문가들도 실제 기술을 구현하고, 제품을 개발하는 일보다 설계와 설계를 위한 깊은 사고(Deep think)가 사람에게 더 필요한 역량일 거라 말한다. 한 개발자는 모든 일의 시작은 펜과 노트에서 시작된다(출처)고 말한다. 1-20년 전 AI시대가 되면 창조적이고 지적인 활동은 인간이 하고, 단순 반복 작업과 몸을 쓰는 일은 기계, AI가 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른 말들이다.

모두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생각하는 힘의 중요성 이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논리를 부여하고 실체화시키는 데는 사고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AI라는 도구가 주어지고, 에이전틱 AI가 스스로 할 일을 만들고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어떤 일을 하고 하지 않을 것인지, 그 일의 목표와 비전은 무엇인지, 일을 성취했을 때 기대되는 성취감과 보상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일의 수행 과정에서 배운 것은 무엇이고 향후 개선하면 좋을 점은 무엇이 있는지, 그 일에서 느끼는 나의 궁극적인 재미와 흥미를 끄는 점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줄여 말하면 단순히 일을 수행하는 것보다 일을 체화하며 수행하는 것은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다. 세상 어떤 일을 하든 한두 번 하고 나면 온전히 자기것이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제아무리 수십 번을 반복해도 워크플로우와 일의 근간, 일 너머의 어떤 가치가 끝내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AGI가 도래하는 시대가 어떻게 바뀌느냐, AI 시대에 나의 직업이 사라지느냐가 아니라 어떤 상황이 되어도 인간으로서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힘을 자신이 갖고 있는가가 아닐까. 폴 그래엄이 말한 것처럼 글을 쓰지 않고 생각한다면, 그저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미래에는, 특히 AI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극명한 차이를 만들 것이다. 벌써 지금부터 어떤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미래에서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예술가의 시선

나는 늘 책상 위에서의 작곡은 없다고 주장해왔다. 어떤 공간에 있건 넋이 나간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모든 예술가들에게 하는 이야기다. 물론 보통 사람들에게도 넋을 빼고 멍하니 산을 바라보는 시간은 필요하다. 넋을 잃는다는 건 어떤 상태일까? 이를테면 세 가지의 공간과 세 가지의 시간 속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넋을 놓는 법을 알면 한 사물을 보고 여러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테이블 위의 이 케이크를 마보는 나는 이케이크가 참 맛있다는 생각과 함꼐 1971년에 할아버지가 사왔던 케이크의 맛을 떠올리고, 내년에 필리핀에서 딸이 들어오면 케이크를 사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세 가지 시간이 한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어떤 눈빛이 되고 그런 눈빛일 때 그를 보는 이들은 말한다. 그가 사색하는 중이라고······ -김태원 『우연에서 기적으로』 59p <넉을 잃다2> 2011

한때 부활의 김태원의 화법을 좋아했다. 자신이 곡을 줬던 가수 장나라의 노래 <5월의 눈사람>을 들으며, “눈사람을 만들던 그때의 이야기죠, 그건 8월의 크리스마스의 영향을 받은 거죠, 그것보다 더 슬픈 상황이죠 5월의 눈사람이니까… 눈사람을 그리워한다면 가슴에 항상 있겠죠, 여름에도 그 노래를 들으면 겨울이 될 거 아니야” 는 말. 오래전 읽었던 그 책의 내용들처럼 늘 은유와 서정성이 있는 음악처럼 남다른 감성과 그 시선이 좋았다. 오래전 <남자의 자격>에서도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학생의 질문에 “비밀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해. 너를 계속해서 알고 싶도록.” 그런 말을 했었지. 만약 나도 처음부터 슬픔의 여러 시간과 층위를 볼 수 있고, 미소 너머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지금쯤 그 숱한 고통도 조금은 덜 무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어떤 인생도 낭비란 없다

“어떤 인생에도 낭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실업자가 10년 동안 무엇 하나 하는 일 없이 낚시로 소일했다고 치자. 그 10년이 낭비였는지 아닌지, 그것은 10년 후에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낚시를 하면서 반드시 무엇인가 느낀 것이 있을 것이다. 실업자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견뎌 나가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내면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헛되게 세월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무엇인가는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헛되게 세월을 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 훗날 소중한 체험으로 그것을 살려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 이병철, 삼성 창업주

삶은 벌어진 일, 눈앞의 현실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얼핏 아무것도 아니게 보이는 거지만 이게 시작이고 전부다. 그래서 순간을 보면 실패로 보이는 사람도 역사를 보면 달리 보이는 것이다.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

지난 달에 레딧(Reddit)의 한 서브레딧에 올라온 글.

Q. 유명 관광지에서 진부한 사진만 찍는 게 지겨워요. 사진에서 더 깊은 의미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흥미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대신, 지루한 대상을 흥미롭게 촬영해 보는 건 어떨까요?

나는 그런 유연하고 통통 튀는 사고방식, 같은 걸 다르게 보는 색다른 시선, 자기만의 해석과 행동양식이 있는 사람의 글을 읽는 게 즐겁다. 대체로 인생을 잘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What)‘이 아닌 ‘어떻게(How)‘에 비중을 두고 살아가는 힘에 있다고 믿는다. 지식과 기술은 도처에 널려 있는 시대이니까. 무엇을 할 때 왜 필요하고 어떻게 활용할 건지가 중요한 시대인 것이다. 마치 중요한 건 어떤 일이 일어났냐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나의 생각’이라고 하던 스토아 학파의 말처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가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왜 그렇게 하려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려 한다.

이유를 대려면 백 가지도 댈 수 있어, 핑계대지마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어때? 우리가 살면서 뭔가에 이유를 대잖아. 이유/핑계를 100가지도 댈 수가 있어. 그게 루저 마인드야. 자꾸 핑계대고, 자꾸 이유대고… 이런 약한 모습 안 보고 싶다는 거야. 이해했어? 너 자신을 크게 생각해. 할 수 있다니까, 충분히? 타협하지마 타협. 자꾸 익슈큐즈를 하지 말라고. 익슈큐즈가 아니고 솔루션을 해. 솔루션을. 네 자체 내에서. ‘이렇게 했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아쉽다’ ‘이렇게 해서 다음에는 제대로 해봐야겠다’ 이런 거 있잖아. 익스큐즈가 아니라 솔루션으로 바꾸라고. 생각하는 마인드 자체를. 알겠지? 그래야 큰 선수 돼. 여기서만 이렇게 있을 거야? 그래, 더 큰 데 가야지. 그럼 더 큰 생각을 해야 한다니까. 편하게 못 가요. 누구든 편하게 못 가. 여기 있는 사람들 편하게 왔는 줄 알아? 아니야. 다 어렵게 했어. 너도 어려웠겠지만 더 어렵게 간 사람들 많아. 잘 할 수 있다니까. 잘해봐.”

-<신임감독 김연경> 5회 김연경이 인쿠시에게.

메모를 들춰보던 중에 끼적대며 적어놓았던 예능의 대사가 보였다. 그걸 어떤 형태로든 자꾸 다시 보고 스스로를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서 적는다.

돌아보면 나도 늘 이유(핑계)를 댔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현실적으로 이건 힘들고.. 등등. 그런 이유들 속에 내 속살을 감추고 살았다. 내 민낯을 마주하기 싫어서였다. 내 자신없는 모습, 현실조건에 지고마는 마인드, 나약한 마음들… 내가 처한 조건상 악을 써도 이겨내기 힘들다는 생각이 나를 더 나락으로 내던졌는지도 몰랐다. ‘이것보다 더 어떻게 힘을 내?’ 그런 생각. 김연경은 그런 걸 두고 ‘루저 마인드’ 라고 했다. 루저마인드. 그래 맞다. 결국 어려운 현실을 이야기하고, 나의 조건들로 투덜대고, 운명을 탓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모두 나의 끝없는 실패를 합리화하고 내 안의 약한 나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쳐놓은 방패막 같은 거였지.

그럼에도 끝없이 현실 조건에 부딪치긴 했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려고 수없이 했던 노력들. 남들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발악에 가까웠을지 몰라도 나 자신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더 이유를 대지 말고, 오롯이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마음에만 집중해서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된다는 생각, 바꿔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한때 책 <시크릿>을 보고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도 괜스레 그것을 믿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악화일로를 겪던 현실에 마인드가 자꾸 누그러져서 그런 결과를 낳았다. 나는 여전히 나의 현실에 맞서 분투 중이고, 끝없이 실패하면서도 다시 부딪치는 중이다.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것이고, 타고난 운명은 바꿀 수 없는 거라고 하고, 무지하게 달려드는 걸 두고 ‘바위에 계란치기’라고 한다. 그럼에도 원래라면 초년에 싹이 밟혀서 사람 구실 하나 못 하고 살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온 것 또한 끝없이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만든 결과였다. 낡은 마인드만 조금 바꾸면 될 거다. 하고자 하는 걸 명확하게 하고 본디 편하게 할 수 없는 처지라는 걸 명백하게 인정한 다음 그냥 할 수 있는 걸 조금씩 한다고만 생각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이상이 현실을 이끌어야 한다는 말과 같은 거지.

이상이 현실을 이끌어야 한다

“Such widespread phenomena as depression, aggression, and addiction are not understandable unless we recognize the existential vacuum underlying them. Ever more people today have the means to live, but no meaning to live for.” - Viktor Frankl <Man’s Search of Meaning>

“우울증, 공격성, 중독과 같은 이처럼 널리 퍼진 현상들은 그 밑에 깔린 실존적 공허를 인식하지 않으면 이해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살아갈 의미는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언젠가 이 글을 읽었다. 이글을 인용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현명한 삶의 중심 원칙 중 하나는 이상주의가 실용주의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현실을 이끌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청구서, 건강 문제, 가족의 요구와 같은 삶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어야 하지만, 이상은 항상 북극성처럼 있어야 합니다. 그 북극성이 삶의 방향과 분위기를 결정하니까요.” 그것을 읽으며 나의 이상과 꿈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평생 물었을 것이다. 나의 이상은 무엇인지. 나의 북극성은 어디에 있는지를.

사실 글을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관찰했고 그것이 마음에 남았는지 아닌지, 내가 바라보는 현실의 모양과 색깔은 어떠한지, 인간들의 모습과 우리의 역사와 우리가 가진 것, 그리고 잃어버린 것들을 알아내기 위하여…

그것은 글을 쓰지 않는 한 명료한 생각과 가치관을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알고 있지 하며 뭉뚱그리고 넘어가는 것과 명료하게 글로 표현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를 만드는 것이기도 해서다. 그냥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 보고 들은 걸 생각하는 것, 그걸 말하는 것과 글로 남기는 것의 각각에는 뛰어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생각의 줄기는 수없이 새겨진 글들 사이에서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는 거니까.

그러다 보면 내가 바라는 나의 이상, 나의 북극성도 조금은 선명해지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나의 현실은 척박했다. 척박함을 이기려면 아름다운 이상이 필요했지만, 생각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수많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나는 빛을 따라가며 살고 싶기에, 내 삶의 방향을 바로 잡고 싶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