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리터의 눈물, 2005 - 사랑하기, 또 사랑하기

1리터의 눈물

<1리터의 눈물, 2005>을 보았다. 엄청 슬픈 이야기다 정도로만 기억하던 일본 드라마였는데 어쩌다 보게 되었다. 11부작은 너무 길다 하면서도. 몸이 제 기능을 하지 않을 때만큼 ‘이야기’에 빠져들기 좋은 때도 없는 것 같다. 지난번 입원하면서 <종이의 집> 1, 2를 보았고 이번에도 11부장 드라마를 다 보았으니. 하긴 움직여서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책과 영화로 내 품에 세상을 끌어들이겠다 하는 마인드도 좋은 것 같다. (그래도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있다면 좋겠다) <1리터의 눈물, 2005>은 키토 아야(1962~1988)가 15세(중3) 시절, 척수소뇌변성증이라는 불치병에 걸렸음을 알게 된 시점부터 양호학교 졸업 후 입원실에서 스스로 펜을 들 수 없을 때(20세)까지 공책에 쓴 일기를 바탕으로 출간된 책(1リットルの涙)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이다. 척수소뇌변성증은 소뇌의 퇴행성 변화로 인해 균형감각 이상, 보행장애, 언어 장애 등 각종 운동신경이 서서히 마비되는 희귀병으로 2026년 현재까지 치료법이 없는 불치병이다. 아야는 15세에 발병하여 10여 년간 투병하다 명을 달리했다. 드라마는 발병부터 죽음 이후의 모습까지 담겼다.

1리터의 눈물

1화 에필로그를 볼 때까지 실화인 줄 몰랐다. 그런데 매화 에필로그에 그녀가 쓴 일기와 그녀의 생존 행복하고 활달했던 모습들이 사진으로 보이는데, 여러모로 슬펐다. 치료법은 전무하고, 재활과 약물로 조금이라도 늦춰보려 애를 쓰지만 빠르게 악화되는 그녀의 건강과 화목했던 네 가족에 스며드는 슬픔과 눈물들, 학교 친구들의 도움이 시간이 지날수록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커져가는 절망 같은 현실들, 농구를 좋아했던 소녀가 공 던질 수 없게 되고, 공부를 위해 펜 드는 일이 힘겨워지고, 그 나이대의 소녀라면 누구나 꿈꿔볼 수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사랑과 결혼을 상상하는 일조차 포기해야만 하는 환경이 그랬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 모두가 상실되어가는데, 그게 너무나 슬펐다. 왜냐하면 학창 시절의 내가 그랬으니까. 학교는 가지도 못 한 채 혼자 걷지도 못하고, 팔을 굽히거나 펴지 못하고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는 상황들, 눈수술로 앞을 보지 못해 병실에서 엄마가 수저로 밥을 겨우 먹여주던 날들, 온갖 수술대에 올랐던 시간들이 내게도 있었다. 그때는 절망할 겨를이 없었다. 아야처럼 스스로 이겨내고 슬픔을 주변에 퍼트리지 않고 싶어서 악을 썼으니까…

1리터의 눈물

나는 상상하게 된다. 점차 걷는 모습이 이상해지고 이상해진 외양으로 주변 시선이 얄궂게 변하고, 공 던질 힘조차 없어져서 운동부원에서도 빠지고, 휠체어로 겨우 움직이지만 늘 주변의 도움이 없으면 계단 하나 못 오르는 상실의 과정을. 펜을 쥐는 게 힘들고, 밥알을 넘기는 게 고통이 되는 시간들을. 자신은 주변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피해만 주는 존재라는 자각은 자기 효능감을 극도로 떨어트리는지를, 미래의 꿈을 집어삼키다 못해 화장실 오가는 것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존엄성까지 말살당하는 절망의 과정들을. 나라면 어땠을까? 그녀처럼 웃을 수 있었을까? 실은 그때 비슷한 환경에 있던 나는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다. 말 그대로 1리터의 눈물을.

1리터의 눈물

나는 너무 오래 살았다. 언젠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너무 오랜 기간 딱 죽지 않을 만큼 힘들어서 나와 주변 모두 실의에 빠지게 만들었다. 한 번쯤은 다 함께 웃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야를 위해 헌신하는 가족과 해답 없는 질병에도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마음을 다하는 담당의, 끝까지 그녀와 함께 하는 학급 친구들, 그녀 곁에서 그녀가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아소까지. 지금에 와서 다시 보이는 건 현실의 무게와 절망, 희망의 부재보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그녀의 인생에서 늘 함께 하며 사랑과 온기를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들이었다. 그렇게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너무 오래 살았다기 보다 너무 홀로 오래 견뎠다가 맞는 듯싶다.

1리터의 눈물

그녀는 형을 사고로 잃고 여전한 상처 속에서 지내는 아소에게 다시 삶의 의미를 찾게 하고, 친구들에게 더 피해를 주기 싫은 마음에 양호학교로 가서 열심히 재활을 하며, 의사조차 “환자가 포기하지 않는데 어떻게 의사가 포기를 하느냐"와 같은 의지를 전파한다. 실제 아야의 일기와 친구들과 주고받던 편지에서도 강한 의지와 주체적으로 살려고 하는 모습들이 많이 담겨 있다고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더욱더 혼자서만 힘들어했던 나날이 떠올라 슬펐다. 드라마라서 그렇게 그려진 거겠지만, 그녀 주변에는 그녀를 위해 헌신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때 남자 주인공인 아소의 아버지의 말이 현실은 낭만이 아님을 깨쳐 주었는데, “투병 기간이 오래되면 주변 모두가 지치게 마련이다, 너는 아야가 더 힘들어지면 도망가지 않을 수 있느냐"라는 말이 특히 그랬다. 돌아보면 나 또한 19-25세까지 정말 주변 모든 사람의 처절한 노력이 있었다. 그게 끝나지 않고 10년 20년 가까이 더 흘러버려서 문제가 되었지만…

1리터의 눈물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절망하던 소녀는 엄마를 붙잡고 우짖는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러나 엄마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네가 왜 아무것도 할 수 없느냐고, 너는 글을 쓸 수 있지 않느냐고. 무뚝뚝한 아소 또한 알게 모르게 그녀의 곁에서 ‘너는 절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걸 상기시켜주었다. 결국은 이 드라마에서 불치병과 절망이라는 테마보다 숱한 인간관계 속에서 이어지는 다정함과 친절함, 의지와 연대, 치유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관계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조금 더 나를 풀어놓고 울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인간관계가 너무나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전쟁하듯 하루하루 겨우 버티고 있는 삶을 잠시나마 떨쳐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모든 날들은 다정함과 친절함이 너무도 그리운 나날들이었다… 그래, 이건 리뷰가 아니라 내 지난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소회이다.. 보잘것없는 나를 지켜봐 주고 지지해 주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병은 불치병이야. 치료법이 없대. 언젠가 걷는 것도, 서는 것도, 말하는 것도 못하게 된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지난 1년 동안 당연하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할 수 없게 되었어. 꿈속에서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걷거나 농구를 하면서 마음껏 뛰는 일이 가능했는데 눈을 뜨면 더 이상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돌아와. 매일매일 달라졌어. 넘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도시락을 빨리 먹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있을 수 있는지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일을 하고… 그런 식으로 상상하던 미래가 사라져 버렸어. 살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고 희미한 희망의 빛도 보이지 않았어. 병에 걸린 탓에 내 인생은 무너졌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어. 하지만, 그래도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었어. 아무리 울어도 병에서 도망칠 수 없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도 시간은 돌릴 수 없어. 그러면 스스로 지금의 나를 좋아할 수밖에 없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어. 왜냐하면 이런 상황이 되고, 많은 걸 처음으로 느끼게 됐거든.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가족은 참 감사한 존재라는 것, 아무렇지도 않게 도와준 친구의 손이 매우 따뜻했다는 것, 건강하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한 일이라는 것, 병에 걸려서 잃은 것만 있는 건 아니었어. 이런 몸이 된 내가 바로 나라고, 장애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내가 지금의 나라고, 가슴을 펴고 당당히 살자고 생각했어. 그래서 양호 학교로 가는 건 내가 정한 거야. 너희와 살아가는 장소는 달라지겠지만 이제부터는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서 희망을 발견해 가려고 해. 이렇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나는 적어도 _1리터의 눈물_을 흘렸어. 그러니까 이제 나는 이 학교를 떠나더라도 뭔가가 끝나버렸다고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모두 지금까지 친절하게 대해줘서 정말 고마워.”

  • 8화 고등학교를 떠나며 친구들에게 건네는 작별 인사

1리터의 눈물

작업들

준비중..

주제별로 생각을 아카이브하기

주제별-노트

살다 보면 늘 생각하게 되는 주제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사람, 장소, 취미, 건강, 계획, 재정. 계속해서 생각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각각에 대해 “생각 정리” 일지를 따로 만들어 보세요. 이 주제에 대해 생각나는 것이 있을 때마다 해당 파일을 열고 오늘 날짜를 적은 다음 글을 쓰기 시작하세요. 각 주제에 대한 생각을 한곳에 모아두는 것이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주제에 대한 제 생각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혹은 어떻게 반복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끔 어떤 주제에 대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럴 땐 파일을 열어서 적어두는데, 나중에 보면 똑같은 생각을 1년 전에도 했었는데 잊고 있었던 경우가 있죠. 당신의 생각을 소중히 여긴다면, 간직하세요. - Derek-Sivers

생각의 끌타래는 자신의 생각이 어떤 경로로 생겨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데렉시버스는 기업가로써 성공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매각했고, 현재는 삶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 뉴질랜드(?)에서 가족과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여러 권의 책도 집필했고 블로그도 운영했는데, 그런 그가 특별할 것 없는 주제를 두고 생각날 때마다 노트를 펴서 기록해보라고 조언한다. 생각의 줄이 시간을 타고 이어지고 또 이어져서, 노트를 펼 때마다 1년 전에 나는 ‘사랑’을 주제로 이렇게 생각했구나, 아 내가 반복적으로 이 생각을 하고 있네 같은 자기 이해의 단초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특정 주제로 메모를 계속해서 남기다보면 책이나 나만의 콘텐츠가 될만한 씨앗을 심고 가꾸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버려야 할 생각은 버리고, 키울 생각은 다양한 갈래로 확장할 수 있는 것. 그건 메모가 주는 가장 큰 힘 중 하나이다.

뇌를 재구성해서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기

뇌는 항상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을 한다.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게 좋을지를 판단하는 기계처럼. 갑작스레 단 것이 먹고 싶다든지 자극적인 영상을 보거나 숏폼을 한없이 보게 만드는 것과 같은 모든 충동은 단순한 쾌락의 추구가 아니라 도파민을 끊임없이 원하는 뇌의 갈망(Craving)이 원인이다. 한 번 도파민의 급증 상태(Dopamine Spike)를 맛본 뇌는 끊임없이 그러한 상태를 원하게 되고 이런 상태는 대체로 1분간 높은 가소성 상태로 만든다. 그때 도파민이 급증하는 갖가지 행동을 반복하면, 보상과 강화가 계속되어 시간이 갈수록 욕구는 강해지고 다시 중독되듯 도파민이 마구 분비될 만한 행동을 찾는 걸신(?) 같은 상태가 되곤 하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뇌가 강렬한 도파민의 자극을 원할 때 딱 1분만 다른 행동을 해보자. 지금 내가 이런 걸 강하게 갈망하고 있다는 상태는 인지하되 그 갈망에서 잠시 물러나 다른 일로 대체해보는 것이다. 단 1분간의 다른 행동으로 인해 뇌는 새로운 연결망들을 만들고 기존의 고자극 도파민 스파이크를 대체한다.

그때 중요한 건 다른 행동을 하며 1분을 참아낸 자신에게 적절한 보상을 선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1) 도파민 자극을 원한다는 상태를 인정하기2) 다른 행동하기 에 이어 3) 그 행동을 한 자신에게 보상하기 라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기 시작하면, 악습관과 숏폼, 고자극에 절어 있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번쯤 시간을 숏폼과 릴스에 빠져 헛되이 보내고 더 높은 자극이 아니면 만족이 되지 않는 자기 자신에게 한심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단지 다른 행동을 하고 보상하는 몇 번의 과정들이 많은 걸 바꿀 수 있다.

이 글은 <레딧의 글> 이 인상깊어 재정리하는 용도로 적어두기 위해 썼다.

관련 논문들

  • Yagishita, S. et al. (2014). A critical time window for dopamine actions on the structural plasticity of dendritic spines. Science, 345(6204), 1616–1620. 
  • Reynolds, J. N. J., Hyland, B. I., & Wickens, J. R. (2001). A cellular mechanism of reward-related learning. Nature, 413, 67–70. 
  • Gerstner, W., Lehmann, M., Liakoni, V., Corneil, D., & Brea, J. (2018). Eligibility traces and plasticity. Neuron, 97(2), 273–289. 
  • Lisman, J., Grace, A. A., & Duzel, E. (2011). A neoHebbian framework for episodic memory; role of dopamine-dependent late LTP. Neuron, 72(5), 703–717. 
  • Sutton, R. S., & Barto, A. G. (2018). Reinforcement Learning: An Introduction (2nd ed.). MIT Press.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쓰지 않는 사람

폴 그레엄(Paul Graham)은 앞으로의 세상은 글을 쓰는 사람글을 쓰지 않는 사람 (Writers and Write-nots)으로 나뉠 것이라고 전망한다. 많은 AI 전문가들도 실제 기술을 구현하고, 제품을 개발하는 일보다 설계와 설계를 위한 깊은 사고(Deep think)가 사람에게 더 필요한 역량일 거라 말한다. 한 개발자는 모든 일의 시작은 펜과 노트에서 시작된다(출처)고 말한다. 1-20년 전 AI시대가 되면 창조적이고 지적인 활동은 인간이 하고, 단순 반복 작업과 몸을 쓰는 일은 기계, AI가 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른 말들이다.

모두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생각하는 힘의 중요성 이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논리를 부여하고 실체화시키는 데는 사고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AI라는 도구가 주어지고, 에이전틱 AI가 스스로 할 일을 만들고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어떤 일을 하고 하지 않을 것인지, 그 일의 목표와 비전은 무엇인지, 일을 성취했을 때 기대되는 성취감과 보상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일의 수행 과정에서 배운 것은 무엇이고 향후 개선하면 좋을 점은 무엇이 있는지, 그 일에서 느끼는 나의 궁극적인 재미와 흥미를 끄는 점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줄여 말하면 단순히 일을 수행하는 것보다 일을 체화하며 수행하는 것은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다. 세상 어떤 일을 하든 한두 번 하고 나면 온전히 자기것이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제아무리 수십 번을 반복해도 워크플로우와 일의 근간, 일 너머의 어떤 가치가 끝내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AGI가 도래하는 시대가 어떻게 바뀌느냐, AI 시대에 나의 직업이 사라지느냐가 아니라 어떤 상황이 되어도 인간으로서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힘을 자신이 갖고 있는가가 아닐까. 폴 그래엄이 말한 것처럼 글을 쓰지 않고 생각한다면, 그저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미래에는, 특히 AI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극명한 차이를 만들 것이다. 벌써 지금부터 어떤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미래에서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예술가의 시선

나는 늘 책상 위에서의 작곡은 없다고 주장해왔다. 어떤 공간에 있건 넋이 나간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모든 예술가들에게 하는 이야기다. 물론 보통 사람들에게도 넋을 빼고 멍하니 산을 바라보는 시간은 필요하다. 넋을 잃는다는 건 어떤 상태일까? 이를테면 세 가지의 공간과 세 가지의 시간 속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넋을 놓는 법을 알면 한 사물을 보고 여러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테이블 위의 이 케이크를 마보는 나는 이케이크가 참 맛있다는 생각과 함꼐 1971년에 할아버지가 사왔던 케이크의 맛을 떠올리고, 내년에 필리핀에서 딸이 들어오면 케이크를 사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세 가지 시간이 한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어떤 눈빛이 되고 그런 눈빛일 때 그를 보는 이들은 말한다. 그가 사색하는 중이라고······ -김태원 『우연에서 기적으로』 59p <넉을 잃다2> 2011

한때 부활의 김태원의 화법을 좋아했다. 자신이 곡을 줬던 가수 장나라의 노래 <5월의 눈사람>을 들으며, “눈사람을 만들던 그때의 이야기죠, 그건 8월의 크리스마스의 영향을 받은 거죠, 그것보다 더 슬픈 상황이죠 5월의 눈사람이니까… 눈사람을 그리워한다면 가슴에 항상 있겠죠, 여름에도 그 노래를 들으면 겨울이 될 거 아니야” 는 말. 오래전 읽었던 그 책의 내용들처럼 늘 은유와 서정성이 있는 음악처럼 남다른 감성과 그 시선이 좋았다. 오래전 <남자의 자격>에서도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학생의 질문에 “비밀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해. 너를 계속해서 알고 싶도록.” 그런 말을 했었지. 만약 나도 처음부터 슬픔의 여러 시간과 층위를 볼 수 있고, 미소 너머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지금쯤 그 숱한 고통도 조금은 덜 무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어떤 인생도 낭비란 없다

“어떤 인생에도 낭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실업자가 10년 동안 무엇 하나 하는 일 없이 낚시로 소일했다고 치자. 그 10년이 낭비였는지 아닌지, 그것은 10년 후에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낚시를 하면서 반드시 무엇인가 느낀 것이 있을 것이다. 실업자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견뎌 나가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내면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헛되게 세월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무엇인가는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헛되게 세월을 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 훗날 소중한 체험으로 그것을 살려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 이병철, 삼성 창업주

삶은 벌어진 일, 눈앞의 현실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얼핏 아무것도 아니게 보이는 거지만 이게 시작이고 전부다. 그래서 순간을 보면 실패로 보이는 사람도 역사를 보면 달리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것은 기억해도 무엇을 봤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것은 기억해도 무엇을 봤는지는 기억하지 못해요.”

우연히 보게 되었던 유튜브에서 Megan Tan이 한 말. 영화 제작자이자 크리에이터로서 사물(Things)이 아닌 느낌(Feel)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 방법들을 활용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교토(Kyoto)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본은 갈 수 없지만 다다미 문은 만들 수 있다, 조명을 조절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소품을 활용할 수 있다와 같은 얘기들을 하며 위의 말을 했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 확실히 나는 무얼 봤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고 영상의 분위기와 느낌만 잔상에 남아 있다. 그가 옳았다.

‘중요하지 않은 걸 잘 하는 것’ 보다 ‘중요한 걸 그럭저럭이라도 하는 것’ 이 더 필요하다. 아무거나 잘 해내는 것보다는 정말 필요로 하고 중요한 일을 그럭저럭이라도 하는 것. 말처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세스 고딘은 [링크 끊김: 관심과 신뢰를 얻으세요] 라고 했다. 어떤 비즈니스를 하느냐에 따라 중요한 것은 다르다라고. 영상 제작 또한 ‘사람들이 무엇을 보게 될지’에만 신경쓰면 정작 중요한 어떤 ‘느낌을 주려 하는지’는 뒷전이 된다. 주객이 전도되는 건 마냥 쉬운 일이다.

오래전 방송 실험을 본 적 있다. 한 카페에서 요란한 옷을 입고 한참이나 실험 대상자 옆에 있었던 사람. 한참 후에 대상자에게 옆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입은 옷이나 색깔 등이 기억나느냐고 물었고, 대부분의 사람이 기억하지 못했다. 결론은 ‘당신 생각보다 사람들은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였는데, 사실은 그런 명명백백한 사실보다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쏟지 않을 판단력 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했다. 쓸데 없는 일에 들이는 에너지를 줄여서 보다 중요한 일에 매진하는 것. 그건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일보다 인생 전체를 잘 살아가는 근본적 힘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는 시간이었다.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

지난 달에 레딧(Reddit)의 한 서브레딧에 올라온 글.

Q. 유명 관광지에서 진부한 사진만 찍는 게 지겨워요. 사진에서 더 깊은 의미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흥미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대신, 지루한 대상을 흥미롭게 촬영해 보는 건 어떨까요?

나는 그런 유연하고 통통 튀는 사고방식, 같은 걸 다르게 보는 색다른 시선, 자기만의 해석과 행동양식이 있는 사람의 글을 읽는 게 즐겁다. 대체로 인생을 잘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What)‘이 아닌 ‘어떻게(How)‘에 비중을 두고 살아가는 힘에 있다고 믿는다. 지식과 기술은 도처에 널려 있는 시대이니까. 무엇을 할 때 왜 필요하고 어떻게 활용할 건지가 중요한 시대인 것이다. 마치 중요한 건 어떤 일이 일어났냐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나의 생각’이라고 하던 스토아 학파의 말처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가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왜 그렇게 하려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려 한다.

이유를 대려면 백 가지도 댈 수 있어, 핑계대지마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어때? 우리가 살면서 뭔가에 이유를 대잖아. 이유/핑계를 100가지도 댈 수가 있어. 그게 루저 마인드야. 자꾸 핑계대고, 자꾸 이유대고… 이런 약한 모습 안 보고 싶다는 거야. 이해했어? 너 자신을 크게 생각해. 할 수 있다니까, 충분히? 타협하지마 타협. 자꾸 익슈큐즈를 하지 말라고. 익슈큐즈가 아니고 솔루션을 해. 솔루션을. 네 자체 내에서. ‘이렇게 했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아쉽다’ ‘이렇게 해서 다음에는 제대로 해봐야겠다’ 이런 거 있잖아. 익스큐즈가 아니라 솔루션으로 바꾸라고. 생각하는 마인드 자체를. 알겠지? 그래야 큰 선수 돼. 여기서만 이렇게 있을 거야? 그래, 더 큰 데 가야지. 그럼 더 큰 생각을 해야 한다니까. 편하게 못 가요. 누구든 편하게 못 가. 여기 있는 사람들 편하게 왔는 줄 알아? 아니야. 다 어렵게 했어. 너도 어려웠겠지만 더 어렵게 간 사람들 많아. 잘 할 수 있다니까. 잘해봐.”

-<신임감독 김연경> 5회 김연경이 인쿠시에게.

메모를 들춰보던 중에 끼적대며 적어놓았던 예능의 대사가 보였다. 그걸 어떤 형태로든 자꾸 다시 보고 스스로를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서 적는다.

돌아보면 나도 늘 이유(핑계)를 댔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현실적으로 이건 힘들고.. 등등. 그런 이유들 속에 내 속살을 감추고 살았다. 내 민낯을 마주하기 싫어서였다. 내 자신없는 모습, 현실조건에 지고마는 마인드, 나약한 마음들… 내가 처한 조건상 악을 써도 이겨내기 힘들다는 생각이 나를 더 나락으로 내던졌는지도 몰랐다. ‘이것보다 더 어떻게 힘을 내?’ 그런 생각. 김연경은 그런 걸 두고 ‘루저 마인드’ 라고 했다. 루저마인드. 그래 맞다. 결국 어려운 현실을 이야기하고, 나의 조건들로 투덜대고, 운명을 탓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모두 나의 끝없는 실패를 합리화하고 내 안의 약한 나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쳐놓은 방패막 같은 거였지.

그럼에도 끝없이 현실 조건에 부딪치긴 했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려고 수없이 했던 노력들. 남들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발악에 가까웠을지 몰라도 나 자신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더 이유를 대지 말고, 오롯이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마음에만 집중해서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된다는 생각, 바꿔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한때 책 <시크릿>을 보고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도 괜스레 그것을 믿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악화일로를 겪던 현실에 마인드가 자꾸 누그러져서 그런 결과를 낳았다. 나는 여전히 나의 현실에 맞서 분투 중이고, 끝없이 실패하면서도 다시 부딪치는 중이다.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것이고, 타고난 운명은 바꿀 수 없는 거라고 하고, 무지하게 달려드는 걸 두고 ‘바위에 계란치기’라고 한다. 그럼에도 원래라면 초년에 싹이 밟혀서 사람 구실 하나 못 하고 살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온 것 또한 끝없이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만든 결과였다. 낡은 마인드만 조금 바꾸면 될 거다. 하고자 하는 걸 명확하게 하고 본디 편하게 할 수 없는 처지라는 걸 명백하게 인정한 다음 그냥 할 수 있는 걸 조금씩 한다고만 생각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이상이 현실을 이끌어야 한다는 말과 같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