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있는 시간

오랜 시간 동안 멈춰 있다. 표지판도 없고 나침반도 없이 해가 뜨고 지는 모습만 보며 제 자리에 덩그러니. 뭘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걸 하고 싶은지 아무것도 모르는 까막눈이 되어, 당장의 내일도 눈앞의 오늘도 어찌할 바를 몰라 눈만 멀뚱멀뚱. 그냥 그렇게 있다.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근 건 아니지만 잠겨 있는 건 맞고, 깊은 동굴 속에 숨은 건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틀어박혀 있는 것도 맞다.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고 방향도 없고 감정도 없이 숨만 쉬고 시들어가는 나날들. 살아 있는데 왜 살아 있는지를 모르고, 딱히 살아서 좋은 이유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죽어야 할 이유도 없고 죽어서 좋을 이유도 없는 그런 시간들이다.

40여 년의 세월. 내겐 너무 길었고 끔찍했고 아팠던 나날이었다. 참고 견디고 버티다 보면 조금씩 나아질 줄 알았는데. 지옥 같던 시간들도 세월 속에 점차 옅어지고 무뎌질 줄 알았는데. 많이 아팠으면 다음엔 덜 아플 줄 알았는데. 그만한 내성은 생겼다 믿었는데. 결코 아니었다. 그냥 대책 없이 늙어간 거였어. 내 안의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그저 몸만 아득바득 갉아먹으며 늙어가는 거였지.

악으로 깡으로만 버틴 시간. 그것들이 쌓이고 또 쌓여 마음 한 켠의 어느 구석을 조금씩 갉아먹었네. 망가진 줄 모르고 내달리는 자의 뒷모습은 얼마나 안쓰러운가.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이를 악물고 나아가는 자 얼마나 위태로워. 근데 그게 나였는 줄은 꿈에도 몰랐지.

머리로 살다가 가슴으로 살려니 뭘 알아야지. 다른 사람들 이야기 듣고 안다는 듯이 떠들고 다닐 땐 그들 인생이 참 쉬워보였지? 머리로만 살면 어찌 어렵겠어. 만사가 다 쉽지. 그런데 막상 악으로 깡으로 참고 견디고 버티기만 하다가 더는 못 버티고 하나씩 무너지니 어때. 무너지는 건 한순간 아니냐.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사랑해. 한 번도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살아본 사람이 제 자신이 뭘 원하는지 어떻게 알겠어. 사랑도 받아봐야 줄 수 있고 꿈도 꿔본 사람이 꾸는 거지. 성인 되기 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삶을 꾸려간 적이 없으니까.. 뭘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는 거잖아.

최악이다. 아픈 곳은 많고 일도 없고 돈도 없고. 주변에 속을 털어놓을 사람은커녕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할 사람도 없는 인생. 애비는 치매라도 매일 술만 마시고 엄마는 무릎이 아작나도 병원 일을 하고, 동생은 매일 몸쓰며 일하는, 도통 수렁 속에서 벗어날 길이 안 보이는 주변까지. 어디 아프다고 병원가면 무슨 뾰족한 수도 없고, 그래도 참고 견디며 일해보겠다 해도 어느 곳에서도 불러주는 이 없는 현실. 더는 못해먹겠다고 다 정리하고 부산가서 책방하려고 할 때 더 강건했어야 해. 막장의 코앞에 있다. 더는 퇴로가 없다. 다 돌아가시고 돈 나올 구멍도 없고 이 몸은 하루가 다르게 망가져간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자. 망하면 끝이다. 그랬어야 했다. 작은 꿈도 못 꿔보고 문제 생기면 고치고 안 되면 땜빵이나 하며 살았던 나날이 자기 마음 하나 모르는 어른아이를 만든 것. 그 모든 실패의 순간이 나를 단단하게 하기는커녕 어중간한 무른 인간으로만 만들었네.

자유와 고립

자유를 원했다. 간섭하지 말길 바랐다. 멋대로 통제하려 들면 강한 반감이 생겼다. 어설프게 묶어두려하면 할수록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모든 발악은 몰개성을 요구하는 사회에 대한 반항이었고, 자기 손 아래 두려는 욕심에 대한 저항이었다.

막상 자유가 주어진 지금, 이토록 막막하고 멍할 수 없다. 사막에 혼자 내던져졌는데 당장 마실 물도 없고, 먹을거리를 알아서 찾아나서야 하고, 뜨거운 햇살을 피해 몸과 마음이 쉴 곳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데, 모든 것이 고장난 사람처럼 막막하다. 목줄 놓친 주인을 잃어버린 강아지 같다고 할까? 평생 감옥의 독방에서 썩다가 갑작스레 출소한 죄수 같다고 할까? 자유를 외치던 그때에는 어떻게든 자유만 되찾으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젠 녹슬지도 않았는데 멈춰버린 기계가 된 기분이다.

자유가 주어졌지만 고립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 40대가 정말 무서운 숫자라는 것, 빚지고 문 닫은 매장이 큰 짐이라는 것, 고장난 면역이 두터운 족쇄라는 것. 새삼스레 그 모두가 무겁게 다가온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아파서 제대로 어른이 되고 자립하는 법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분명 어른이 되었고, 한동안 잘 살아왔는데 언젠가부터 완전하게 애가 된 기분이다.

정년 기분 탓일까? 잠시 방황하는 중일까? 아니다. 3년 전에도 그랬고 10년 전에도 그랬다. 그토록 큰수술을 하고서도 아무것도 배운 게 없고, 어른의 논리로 회사가 인수가 되고 거리로 나앉았을 때에도 배운 게 없는 것이다. 매 순간 나에게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 배우고 그게 나의 피와 살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든 아프고 힘든 순간을 넘겨버리고 지나쳐온 탓이다. 그러니 말은 인생 다 산 노인처럼 한다는 말을 듣다가도 행동은 여전히 유치원도 못 뗀 어린애 같은 거지.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과연 그런 게 있긴 할까? 고생하는 내내 진절머리나던 인생이어서 지나온 과거를 모두 잊어버리다 못해 생활의 지혜까지 잊어버린 치매 환자가 된 듯해. 그 무수한 세월을 보내고도 나는 나를 모르고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철부지가 되어버린 지금…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기

나는 내 과거를 증명할 수 없다. 내가 지나왔던 길을 내가 말하는 한 아무런 힘이 없다.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하고, 어떤 사람의 의심도 거둘 수 없다. 지나온 시절마다 만났고 헤어졌던 인연들의 기억, 그들의 잔상 속에 내 모습이 나를 증명한다. 스스로 내뱉는 장황한 설명보다 그들의 기억속의 내 모습을 툭툭 내어놓는 것이 나를 떠받든다. 좋은 사람이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허풍이 아니고 진솔하고 잘 지내왔다고 온갖 말로 풀어내는 것보다 그게 더 효과적이다. 과거는 거짓말해도 과거를 함께 한 이들의 기억속 내 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물론 나 자신을 지운 채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리며, 잘 보이려고 애쓰기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타인과 있든 혼자 있든 그 언제라고 하더라도 나는 온전한 내 모습으로 존재해야 한다. 자연스러움과 솔직함은 언제나 나를 편안하고 슬기로운 길로 이끌 것이고, 나의 기억과 타인의 기억속 내 모습이 비슷할 유일한 길이 될 것이기에. 내가 나를 속이는 순간 모두를 속이는 것과 같고, 내 과거와 내 과거를 함께 했던 이들의 기억도 왜곡하는 일이 되므로… 언제나 나는 나로 살아야 좋다. “네가 너를 설명하는데도 나는 너를 모르겠어” 이따금 그런 말을 듣는다. 도대체 네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느냐 그런 말들. 나도 나를 모르겠다. 너무 현실과 몸의 무게에 짓눌려서 나를 잃어버리고 사는 건지도. 스스로는 내 안의 무가치한 모습과 가치있는 모습이 공존한다고는 느끼는데, 스스로는 좀 더 못난 내 모습에 짓눌려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꾸미려고 꾸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잘 아는 내 못난 모습이 들키고 싶지 않은 것. 스스로도 한심하다 느끼는 부분을 어떻게든 포장하고 싶은 것. 그래서 조금이나마 내가 쓸모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 그게 오히려 나를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게 참 싫은데도 그걸 벗어던지기가 쉽지 않아. 언젠가 나는 나로서 괜찮을 수 있을까? 바보같고 한심해도, 늘 아프다는 핑계로 무너지고 괴로워해도 괜찮을 수 있을까? 내가 나를 안아줄 수 있을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그래도 가끔은 누군가가 내게 그래도 괜찮아 라는 말을 해줬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

치명적인 문제

수 년간 말하는 방법, 왜 말해야 하며, 어떻게 말해야 하며, 잘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찾아 다녔다. 매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는 나날이었다. 스스로 재주가 없다고 느꼈고, 내 안에 이야기를 하는 재주는 없다고 느꼈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두고 ‘당신의 삶 그 자체가 이야기’라 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안에 뭔가가 있기는 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바깥으로 꺼내어 실체화를 할 수 있을지는 몰랐으니까. 끝없이 바깥을 찾아 헤맨 이유였다. 그러나 문득 깨달았다.

내게는 딱히 할 말이 없다는 것을.

1리터의 눈물, 2005 - 사랑하기, 또 사랑하기

1리터의 눈물

<1리터의 눈물, 2005>을 보았다. 엄청 슬픈 이야기다 정도로만 기억하던 일본 드라마였는데 어쩌다 보게 되었다. 11부작은 너무 길다 하면서도. 몸이 제 기능을 하지 않을 때만큼 ‘이야기’에 빠져들기 좋은 때도 없는 것 같다. 지난번 입원하면서 <종이의 집> 1, 2를 보았고 이번에도 11부장 드라마를 다 보았으니. 하긴 움직여서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책과 영화로 내 품에 세상을 끌어들이겠다 하는 마인드도 좋은 것 같다. (그래도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있다면 좋겠다) <1리터의 눈물, 2005>은 키토 아야(1962~1988)가 15세(중3) 시절, 척수소뇌변성증이라는 불치병에 걸렸음을 알게 된 시점부터 양호학교 졸업 후 입원실에서 스스로 펜을 들 수 없을 때(20세)까지 공책에 쓴 일기를 바탕으로 출간된 책(1リットルの涙)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이다. 척수소뇌변성증은 소뇌의 퇴행성 변화로 인해 균형감각 이상, 보행장애, 언어 장애 등 각종 운동신경이 서서히 마비되는 희귀병으로 2026년 현재까지 치료법이 없는 불치병이다. 아야는 15세에 발병하여 10여 년간 투병하다 명을 달리했다. 드라마는 발병부터 죽음 이후의 모습까지 담겼다.

1리터의 눈물

1화 에필로그를 볼 때까지 실화인 줄 몰랐다. 그런데 매화 에필로그에 그녀가 쓴 일기와 그녀의 생존 행복하고 활달했던 모습들이 사진으로 보이는데, 여러모로 슬펐다. 치료법은 전무하고, 재활과 약물로 조금이라도 늦춰보려 애를 쓰지만 빠르게 악화되는 그녀의 건강과 화목했던 네 가족에 스며드는 슬픔과 눈물들, 학교 친구들의 도움이 시간이 지날수록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커져가는 절망 같은 현실들, 농구를 좋아했던 소녀가 공 던질 수 없게 되고, 공부를 위해 펜 드는 일이 힘겨워지고, 그 나이대의 소녀라면 누구나 꿈꿔볼 수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사랑과 결혼을 상상하는 일조차 포기해야만 하는 환경이 그랬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 모두가 상실되어가는데, 그게 너무나 슬펐다. 왜냐하면 학창 시절의 내가 그랬으니까. 학교는 가지도 못 한 채 혼자 걷지도 못하고, 팔을 굽히거나 펴지 못하고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는 상황들, 눈수술로 앞을 보지 못해 병실에서 엄마가 수저로 밥을 겨우 먹여주던 날들, 온갖 수술대에 올랐던 시간들이 내게도 있었다. 그때는 절망할 겨를이 없었다. 아야처럼 스스로 이겨내고 슬픔을 주변에 퍼트리지 않고 싶어서 악을 썼으니까…

1리터의 눈물

나는 상상하게 된다. 점차 걷는 모습이 이상해지고 이상해진 외양으로 주변 시선이 얄궂게 변하고, 공 던질 힘조차 없어져서 운동부원에서도 빠지고, 휠체어로 겨우 움직이지만 늘 주변의 도움이 없으면 계단 하나 못 오르는 상실의 과정을. 펜을 쥐는 게 힘들고, 밥알을 넘기는 게 고통이 되는 시간들을. 자신은 주변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피해만 주는 존재라는 자각은 자기 효능감을 극도로 떨어트리는지를, 미래의 꿈을 집어삼키다 못해 화장실 오가는 것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존엄성까지 말살당하는 절망의 과정들을. 나라면 어땠을까? 그녀처럼 웃을 수 있었을까? 실은 그때 비슷한 환경에 있던 나는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다. 말 그대로 1리터의 눈물을.

1리터의 눈물

나는 너무 오래 살았다. 언젠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너무 오랜 기간 딱 죽지 않을 만큼 힘들어서 나와 주변 모두 실의에 빠지게 만들었다. 한 번쯤은 다 함께 웃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야를 위해 헌신하는 가족과 해답 없는 질병에도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마음을 다하는 담당의, 끝까지 그녀와 함께 하는 학급 친구들, 그녀 곁에서 그녀가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아소까지. 지금에 와서 다시 보이는 건 현실의 무게와 절망, 희망의 부재보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그녀의 인생에서 늘 함께 하며 사랑과 온기를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들이었다. 그렇게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너무 오래 살았다기 보다 너무 홀로 오래 견뎠다가 맞는 듯싶다.

1리터의 눈물

그녀는 형을 사고로 잃고 여전한 상처 속에서 지내는 아소에게 다시 삶의 의미를 찾게 하고, 친구들에게 더 피해를 주기 싫은 마음에 양호학교로 가서 열심히 재활을 하며, 의사조차 “환자가 포기하지 않는데 어떻게 의사가 포기를 하느냐"와 같은 의지를 전파한다. 실제 아야의 일기와 친구들과 주고받던 편지에서도 강한 의지와 주체적으로 살려고 하는 모습들이 많이 담겨 있다고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더욱더 혼자서만 힘들어했던 나날이 떠올라 슬펐다. 드라마라서 그렇게 그려진 거겠지만, 그녀 주변에는 그녀를 위해 헌신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때 남자 주인공인 아소의 아버지의 말이 현실은 낭만이 아님을 깨쳐 주었는데, “투병 기간이 오래되면 주변 모두가 지치게 마련이다, 너는 아야가 더 힘들어지면 도망가지 않을 수 있느냐"라는 말이 특히 그랬다. 돌아보면 나 또한 19-25세까지 정말 주변 모든 사람의 처절한 노력이 있었다. 그게 끝나지 않고 10년 20년 가까이 더 흘러버려서 문제가 되었지만…

1리터의 눈물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절망하던 소녀는 엄마를 붙잡고 우짖는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러나 엄마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네가 왜 아무것도 할 수 없느냐고, 너는 글을 쓸 수 있지 않느냐고. 무뚝뚝한 아소 또한 알게 모르게 그녀의 곁에서 ‘너는 절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걸 상기시켜주었다. 결국은 이 드라마에서 불치병과 절망이라는 테마보다 숱한 인간관계 속에서 이어지는 다정함과 친절함, 의지와 연대, 치유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관계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조금 더 나를 풀어놓고 울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인간관계가 너무나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전쟁하듯 하루하루 겨우 버티고 있는 삶을 잠시나마 떨쳐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모든 날들은 다정함과 친절함이 너무도 그리운 나날들이었다… 그래, 이건 리뷰가 아니라 내 지난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소회이다.. 보잘것없는 나를 지켜봐 주고 지지해 주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병은 불치병이야. 치료법이 없대. 언젠가 걷는 것도, 서는 것도, 말하는 것도 못하게 된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지난 1년 동안 당연하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할 수 없게 되었어. 꿈속에서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걷거나 농구를 하면서 마음껏 뛰는 일이 가능했는데 눈을 뜨면 더 이상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돌아와. 매일매일 달라졌어. 넘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도시락을 빨리 먹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있을 수 있는지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일을 하고… 그런 식으로 상상하던 미래가 사라져 버렸어. 살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고 희미한 희망의 빛도 보이지 않았어. 병에 걸린 탓에 내 인생은 무너졌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어. 하지만, 그래도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었어. 아무리 울어도 병에서 도망칠 수 없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도 시간은 돌릴 수 없어. 그러면 스스로 지금의 나를 좋아할 수밖에 없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어. 왜냐하면 이런 상황이 되고, 많은 걸 처음으로 느끼게 됐거든.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가족은 참 감사한 존재라는 것, 아무렇지도 않게 도와준 친구의 손이 매우 따뜻했다는 것, 건강하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한 일이라는 것, 병에 걸려서 잃은 것만 있는 건 아니었어. 이런 몸이 된 내가 바로 나라고, 장애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내가 지금의 나라고, 가슴을 펴고 당당히 살자고 생각했어. 그래서 양호 학교로 가는 건 내가 정한 거야. 너희와 살아가는 장소는 달라지겠지만 이제부터는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서 희망을 발견해 가려고 해. 이렇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나는 적어도 _1리터의 눈물_을 흘렸어. 그러니까 이제 나는 이 학교를 떠나더라도 뭔가가 끝나버렸다고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모두 지금까지 친절하게 대해줘서 정말 고마워.”

  • 8화 고등학교를 떠나며 친구들에게 건네는 작별 인사

1리터의 눈물

작업들

예술가의 시선

나는 늘 책상 위에서의 작곡은 없다고 주장해왔다. 어떤 공간에 있건 넋이 나간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모든 예술가들에게 하는 이야기다. 물론 보통 사람들에게도 넋을 빼고 멍하니 산을 바라보는 시간은 필요하다. 넋을 잃는다는 건 어떤 상태일까? 이를테면 세 가지의 공간과 세 가지의 시간 속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넋을 놓는 법을 알면 한 사물을 보고 여러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테이블 위의 이 케이크를 마보는 나는 이케이크가 참 맛있다는 생각과 함꼐 1971년에 할아버지가 사왔던 케이크의 맛을 떠올리고, 내년에 필리핀에서 딸이 들어오면 케이크를 사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세 가지 시간이 한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어떤 눈빛이 되고 그런 눈빛일 때 그를 보는 이들은 말한다. 그가 사색하는 중이라고······ -김태원 『우연에서 기적으로』 59p <넉을 잃다2> 2011

한때 부활의 김태원의 화법을 좋아했다. 자신이 곡을 줬던 가수 장나라의 노래 <5월의 눈사람>을 들으며, “눈사람을 만들던 그때의 이야기죠, 그건 8월의 크리스마스의 영향을 받은 거죠, 그것보다 더 슬픈 상황이죠 5월의 눈사람이니까… 눈사람을 그리워한다면 가슴에 항상 있겠죠, 여름에도 그 노래를 들으면 겨울이 될 거 아니야” 는 말. 오래전 읽었던 그 책의 내용들처럼 늘 은유와 서정성이 있는 음악처럼 남다른 감성과 그 시선이 좋았다. 오래전 <남자의 자격>에서도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학생의 질문에 “비밀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해. 너를 계속해서 알고 싶도록.” 그런 말을 했었지. 만약 나도 처음부터 슬픔의 여러 시간과 층위를 볼 수 있고, 미소 너머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지금쯤 그 숱한 고통도 조금은 덜 무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것은 기억해도 무엇을 봤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것은 기억해도 무엇을 봤는지는 기억하지 못해요.”

우연히 보게 되었던 유튜브에서 Megan Tan이 한 말. 영화 제작자이자 크리에이터로서 사물(Things)이 아닌 느낌(Feel)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 방법들을 활용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교토(Kyoto)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본은 갈 수 없지만 다다미 문은 만들 수 있다, 조명을 조절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소품을 활용할 수 있다와 같은 얘기들을 하며 위의 말을 했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 확실히 나는 무얼 봤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고 영상의 분위기와 느낌만 잔상에 남아 있다. 그가 옳았다.

‘중요하지 않은 걸 잘 하는 것’ 보다 ‘중요한 걸 그럭저럭이라도 하는 것’ 이 더 필요하다. 아무거나 잘 해내는 것보다는 정말 필요로 하고 중요한 일을 그럭저럭이라도 하는 것. 말처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세스 고딘은 [링크 끊김: 관심과 신뢰를 얻으세요] 라고 했다. 어떤 비즈니스를 하느냐에 따라 중요한 것은 다르다라고. 영상 제작 또한 ‘사람들이 무엇을 보게 될지’에만 신경쓰면 정작 중요한 어떤 ‘느낌을 주려 하는지’는 뒷전이 된다. 주객이 전도되는 건 마냥 쉬운 일이다.

오래전 방송 실험을 본 적 있다. 한 카페에서 요란한 옷을 입고 한참이나 실험 대상자 옆에 있었던 사람. 한참 후에 대상자에게 옆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입은 옷이나 색깔 등이 기억나느냐고 물었고, 대부분의 사람이 기억하지 못했다. 결론은 ‘당신 생각보다 사람들은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였는데, 사실은 그런 명명백백한 사실보다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쏟지 않을 판단력 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했다. 쓸데 없는 일에 들이는 에너지를 줄여서 보다 중요한 일에 매진하는 것. 그건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일보다 인생 전체를 잘 살아가는 근본적 힘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는 시간이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Who are you?…

한 남자가 있다.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어느날 조금 더 독립적인 삶을 살기로 마음 먹은 그는 글쓰기를 통해 자유와 독립을 찾는다. 어느 날, 길을 걷다 자전거와 부딪치는 사고를 당하게 되고, 거기서 알게 된 베아트리체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준다. 그 글에 베아트리체는 매료되었고 그녀가 누군가에게 글을 보여주고, 그가 또 다른 이에게, 또 다른 이에게 보여주다가 많은 출판사를 보유한 사람에게까지 넘겨지고 또 감동을 주어서 출간을 하기에 이른다. 초판은 다 나가고 재판을 찍으며 남자는 유명세를 탄다. 일상은 별반 다를 것 없지만 (길을 걷는다 해도 누군가가 알아보는 이가 없다) 그는 왠지 자신이 순식간에 빌딩의 꼭대기에 올라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 괴리감.  한 여자가 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동안 정든 가족이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하며 새로운 삶을 꿈꾼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는 그녀는 극장에 가게 되는데, 이미 연극의 스토리를 줄줄 꿰고 있던 그녀는 주인공이 마지막 리허설에 나타나지 않은 틈에 서게 된 무대에서 찬사를 받는다. 그리곤 아침에는 연극학교에 가고 오후에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여자는 남자의 집에 배달을 간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대화를 하게 되고, 여자는 다음 주에 있을 첫 공연에 들떠 있고 남자는 한순간의 운으로 유명해졌지만 자신에게 재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있다. 여자는 말한다. “나는 당신을 알고 있어요. 당신이 쓴 많은 책을 읽었어요. 당신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당신의 많은 책은 오랫동안 내 유일한 안식처였어요. 내가 어려웠던 시기에 아주 훌륭했던 친구였죠. 때로는 운을 좀 도와야 해요. 내 연극의 무대는 내 것이지만 영감은 당신의 책에서 받은 거예요.”  남자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어떤 고마움을 느낀다. 막연한. 여자는 홀연히 떠나고, 남자는 번뜩이는 무언가를 느끼며 다음 연극무대에서 다시 보자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녀가 전해준 택배상자를 열어보는데. 안은 텅 비어 있다.  “이봐요. 택배 상자에 아무것도 없어요!” “확실해요? 다시 한 번 보세요. 이번에는 운이 좋을 수도 있어요!” 상자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자신의 삶은 자신이 만들어간다. 삶은 비어있는 상자 같은 것, 그것에 무엇을 채울지는 본인에게 달렸다. 그것에 운을 담을 수도, 자신이 못미더워하는 자기 재능을 담을 수도 있다. 우선은 담고, 믿는 것이다.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고 그것이 괜찮을 수도 있다는. 상자를 믿고 안 믿고는 자신에게 달렸다. 그 안에 온갖 선물이 담겨 있다고 믿는 자와 아무것도 없다고 불평하는 자의 삶은 180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운이나 타인의 평가 같은 것은 텅 빈 상자와 같은 것이니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삶에서 우연히 주어진 것을 감사하라는 의미도 있다. 자신에게 우연히 찾아온 기회로 성공한 남자, 그는 그것이 단지 운일 뿐이며 자신의 재능 없음이 만천하에 드러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러나 그녀는 때로는 운을 스스로 도와야 한다는 말을 한다. 자신을 찾아온 운을 자신이 이용할 줄도 알고 그것에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지나친 걱정과 근심, 불안은 이미 찾아온 운마저 달아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은 아닐까. 남자는 자신의 책은 많이 팔려도 거리에 나가면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모르겠다고 실토했지만, 여자는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 자신처럼 힘들 때 좋은 친구가 되고 영감을 주고 기쁨을 주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그러니 자신이 하는 일을 빈 상자를 만드는 일로 치부하지 말고 그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걸 말하고 있다.

눈에 띈 댓글 하나.

  • When the man finds out and tells her the box is empty, she asks him to look again. The second time he looks, he understands that it was not a thing that she delivered. What she delivered was hope, love, gratitude and a sense of meaning to his life. What moved the man was the realization that his work impacted, helped, befriended and influenced a life. That realization moved him to work again on his craft with heart and passion.
  • (남자가 상자가 비어 있다고 말하자 그녀는 다시 한 번 봐달라고 부탁합니다. 두 번째로 다시 본 남자는 여자가 전달한 것이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녀가 전달한 것은 희망, 사랑, 감사, 그리고 그의 삶에 대한 의미였습니다. 그가 감동한 것은 자신의 일이 한 삶에 영향을 주고, 도움을 주고, 친구가 되고,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그 깨달음은 그가 다시 진심과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매진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about me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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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불안의 세계에 나를 밀어넣었다. 잠시도 안정을 허락치 않은 심판자로서, 너 스스로 얼만큼 견딜 수 있는지 보겠다는 고문 집행자로서 살았다. 고통과 열병을 운명처럼 받아들고 지내왔다. 문제를 벗어나려 한다지만 실상은 문제를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 일상의 모습들.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내게도 다른 미래가 있을까? 나도 나를 알 수 없어서 조그맣게 기록해둔다. 업데이트가 6개월 이상 없다면 이미 나는 세상에 없는 존재일 것이다.

Last updated: 2026-05-18


TIMELINE

    1. 첫숨을 쉰 날. 아토피를 달고 태어났다.
    1. 동생의 탄생.
    1. 초등학교 입학. 끝없는 이사. 축구선수를 꿈꿨다.
    1. 중학교 입학. 폭력과 증오만 가득했던 학교생활.
    1. 작곡의 꿈. 축구처럼 현실에 파묻혀서 사라졌다.
    1. 고등학교 입학. 사랑의 계절.
    1.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라며 독립한 아버지를 따라 이사. 거듭된 실패와 고통의 시작.
    1. 새집증후군 발발. 혼자 걷지도 못할 정도로 극심했던 2차감염 증세.
    • “우선 살고 봐야지요"라던 담임선생님의 말. 그 후로 평생 사는 게 먼저가 되지 못했다.
    1. 극심한 아토피증세. 모두 날 보고 피했다. 비명지르고 도망가는 이들. 트라우마의 시작.
    1. 망막박리증. 좌안 실명.
    1. 백내장. 우안 수술. 양눈이 안 보이던 내게 엄마가 밥을 떠먹여 주던 병실의 풍경.
  • 200x. 파산. 슬레이트 집으로 이사. 끝없는 수렁의 늪. 사채업자에게 나를 끌고 가던 아버지.
    1. OKC(치성각화낭종) 수술. C형 간염치료 등.
    1. 사이폴엔 면역억제제로 그나마 사람 구실하던 시기였다. 엄마는 나를 끌고 성당에 갔다. 내 트라우마가 시험받았다.
    1. 성당 청년회로 여러 봉사활동. 수녀원, 아동 요양원 등. 살아 있음의 가치를 처음 느꼈던 시간.
    1. 다시 시작된 부작용. 면역억제제, 스테로이드는 나를 좀먹었다. 여러 사찰을 전전.
  • 201x. 집에 화재. 죽을 뻔했으나 새벽녘의 익명인 덕분에 살았다.
    • 살아서 좋은 줄은 몰랐으나 살았기 때문에 나 또한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게 된 시기.
    1. 취업준비. 수백군데에서 떨어지는 것에 익숙해지던 나날이었다.
    1. 부산 직능원. 온갖 장애인과 생활하며 다양한 군상을 접했다. 여러 자격증을 취득했고 수없이 기업체에서 탈락.
    1. 첫 취업. 만32세. 서울의 작은 스타트업. 콘텐츠 에디터였다. 고시원생활.
    1. 기획자로 전직과 눈숫술.
    • 서비스기획자로 전직(?)이 되었지만, 대표의 악랄함에 스트레스가 심했던지 눈이 점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위험도를 핑계로 수술을 거부하던 병원들. 겨우 아산병원의 한 의사 덕분에 수술을 했고 하나 남은 눈을 지킬 수 있었다.
    1. 제주로 이사. (애월면 -> 안덕면)
    • 여태까지와 같은 생활을 하면 안 된다는 가족(엄마, 동생)의 판단으로 동생이 자처해서 나를 도우러 왔다. 제주 한라병원에서 알레르기 면역 치료를 계속했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1. 치료를 제쳐두고 생활에만 집중한 시간.
    • 더 내려놓았다. 나을 수 있다는 것마저 놓아버린 시기. 오히려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아서 17년도의 봄날을 잠깐이나마 만끽할 수 있었다.
    1. 부산으로 이사.
    • 동생은 졸업을 위해, 나는 새로운 생활을 위해 돌아온 시간. 미래는 없었다.
    1. 취업전쟁.
    • 또다시 수백개의 원서와 수없이 치르는 면접에서 낙방을 거듭했다. 치료와 병행하며 체력을 갉아먹었힌 나날.
    1. 아토피 신약 듀피젠트(듀필루맙) 임상시험 시작.
    • 이것 때문에 대전의 국과수에서 탐탁지 않게 여기고, 내 치료도 힘들어 서울로 터를 옮겼다.
    1. 한 대기업에 특채로 입사.
    • 어쩌다 기획자/운영으로 다시 일하게 되었다. 베트남인력, 한국파견인력 등을 관리하며, 기획일을 도왔다.
    • 상무픽으로 들어온 놈팡이가 나의 선임이었다. 매일 2인분 이상의 일을 했고 욕은 욕대로 얻어먹었다.
    1. 코로나19의 시작. 업무 부담은 줄어들지 않았다.
    1. 코로나19 장기화. 일과 잠뿐인 생활.
    • 나는 선임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덫에 걸린 듯했다. 팀장들도 도망가고, 날 등한시했다. 상무가 꽂은 애인데 어떡하랴. 개인 이기주의의 극치인 조직생활에 지독한 회의감이 들던 나날. 끝없는 이직준비에 들어갔다.
    • 정신과를 다녔다. 번아웃이 온 것 같아요. 의사는 그럴 만하다면서 약을 주었다.
    • 기획 콘텐츠를 쓰고, 홈페이지를 만들고, 포트폴리오를 계속 쌓았다. 벗어나야 한다. 그 일념으로만 살았다.
    1. 깊은 회의감과 퇴사, 이직과 끝없는 고행의 시작.
    • 세번째 팀장은 데이터분석 업무를 잘해내면 그곳에서 빼내어 다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조정해주겠다 했다. 말뿐인 약속이었다.
    • 6월. 또다시 이용만 당했다는 생각에 이직을 준비했다.
    • 서울부산지사가 있는 제주에 이직. 바닷가의 습한 환경에 아토피가 도졌다.
    • 판교의 회사로 이직 후 1시간 30분 출퇴근. 방임의 극치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버려진 팀에 들어갔다.
    • 11월. 또다시 이직. 일 다운 일을 하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3개월간 미친놈처럼 일만 했다. “나는 여기서 더 있으면 안 돼. 벗어나야 해. 뛰어 올라야 해.”
    1. 3개월만에 회사가 인수되며 프로젝트 드랍, 퇴사
    • 세상은 나의 ‘열심히’와 상관없이 돌아갔다. 갑작스레 회사 인수소식과 프로젝트 드랍, 팀이 해체되었다. 나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 해도 너무한다 싶은 시간들. 또다시 반 년 넘도록 수백군데의 원서 지원과 면접, 입사, 탈락이 공존했다.
    • 다시 동생이 나를 구제하러 왔다. 더는 이렇게 살지 말자… 그렇게 단 한 번이라도 좋아하는 일을 해보라는 말에 공간운영을 위해 준비가 시작되었다.
    1. 공유서재 언리밋북스 운영.
    • 부산대학교 앞에 계약 후 2개월간의 준비 끝에 오픈했다. 2주 만에 내리는 비와 누수. 나는 할말을 잃었다.
    • 곡절 끝에 해운대 백사장 앞으로 이전. 인스타 매거진, 울산방송, 뮤직비디오 촬영 등 여러 호재가 이어졌다.
    1. 매장 정리.
    • 누수 때 돈을 너무 많이 잃었다. 더 튀어오르려면 시간이 필요했는데 계엄까지 겹치며 어렵기만 했다.
    • 사촌형 사망 후 무연고처리되었다. 현실의 지독함을 보던 날들.
    • 근 10년 만에 OKC 수술. 재발했다. 재발률이 30%라고 했다.
    •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예전 3개월 일했던 이의 회사에서 일했다.
    1. 다시 야인이 되었다.
    • 경영 문제, AI 도입 등으로 조직을 만들고 싶지 않던 대표에 의해 단기간에 해고처리 되었다. 행정 진정을 넣고 승소했다.
    • 미뤄두었던 발바닥, 발목 치료를 위해 병원을 오가고 있다. S
    • 난 이제 뭘 할 수 있을까?